일손 놓은 세종청사 사무관들… 무슨 일이?
기획재정부의 한 정책 담당 과는 최근 소속 사무관 네 명 가운데 두 명이 휴직했다. 한 남자 사무관은 육아를, 다른 사무관은 건강 돌봄을 이유로 쉬게 됐다. 각자 개인 사정 때문이긴 하지만 기재부 한 과에서 사무관 절반이 휴직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새 정부 들어 악화된 ‘사무관 민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기류가 강하다. 한 관계자는 “정권 차원에서 ‘톱다운’ 식으로 내려오는 지시들이 쏟아지면서 일선 사무관이 업무 과다로 많이 지쳐 있다”며 “다들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세종시 사무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각종 정책 지시와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내건 공무원에 대한 전방위 조사, 일방적인 ‘군기 잡기’ 등이 맞물리면서 업무 의욕이 꺾일 대로 꺾였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찍어 내리기’ 식 업무 증가에 능동적인 업무를 하기 힘들고, ‘열심히 해봐야 정권이 바뀌면 표적만 된다’는 자괴감이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가장 강하게 표출되는 부처는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기재부다. 지난해 말부터 일자리안정자금, 혁신성장, 청년일자리 창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주요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무관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무관은 “청와대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 지시가 내려오고 국·과장들은 거기에 내용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과거 선배들은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정책을 생산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토론이란 걸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릴 뿐”이라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정책을 만들어 찍어내는 기계라는 자조도 나온다”고 했다.

다른 사무관은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다들 면피용으로 때우기 바쁘다”며 “혹시라도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일만 다 떠안고 고생만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수립한 대책에 대해 회의감을 표시하는 사무관도 눈에 띈다. 한 사무관은 기재부가 유튜브에 올린 ‘청년일자리 대책의 뒷땀화!’ 동영상에서 청년일자리 대책에 대한 국민 비판에 “맞는 말이 많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 동영상에서 또 다른 사무관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부처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안정자금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는 신청률을 높이기 위해 업무와 관련없는 공무원까지 동원해 불만을 사고 있다. 고용부와 복지부 산하기관 노동조합은 “정부가 접수기관별로 매일 건수를 할당하고 실적을 압박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무관들이 단체행동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산하기관 노조와 비슷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적폐청산도 사무관을 괴롭히고 있다. 적폐청산을 위한 정부 진상조사위원회는 이전 정부 때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교육부에, ‘노동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 시행과 관련해 고용부에 관련 공무원을 수사의뢰할 것을 요구했다. 고용부는 최근 내부 적폐청산위원회가 과거 정책을 조사하면서 일선 공무원들의 개인용 PC를 샅샅이 뒤진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 사이에서는 “탈(脫)원전 업무 하면 탈난다”는 말이 돌고 있다. 현 정부 코드에 맞춰 일하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적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산업부 모 국장과 과장이 지난 정부 때 산하 공기업 인사에서 청와대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최근 구속된 일도 사무관들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일선 공무원을 개혁 대상으로만 삼고 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사무관은 정책 수립의 말단에서 공무원 사회를 떠받치는 지지대와 같은 존재”라며 “일선 사무관 의욕이 가라앉다 보면 언젠가 정부 정책 기능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임도원/김일규/심은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