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경파 볼턴 등판… 예상외 '北·美 대타협' 일어날 가능성도"
“초강경 매파인 존 볼턴의 등장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깨지거나 연기될 수도 있겠지만 의외의 대북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77·고려대 명예교수)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되고 초강경 매파로 꼽히는 볼턴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후임으로 내정된 데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23일 서울 한남동 개인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반평생을 대학에서 외교를 가르치고 김영삼 정부 땐 외무부 장관, 노무현 정부 땐 주미대사를 지낸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한국 정부가 처한 외교적 상황에 대해 “난감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늘 그 자신감이 없어지는 일이 생겨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로 일을 처리합니다. 특히 외교·안보부문에선 상당히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전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미 외교는 흥정의 장으로 변해 버렸고, 과거와 달리 예측 불가능한 관계가 돼가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인터뷰] 1994년 北·美 제네바합의 '산증인' 한승주 前 외무부 장관

[한경인터뷰] 1994년 北·美 제네바합의 '산증인' 한승주 前 외무부 장관

▷한국을 둘러싼 주변 4강의 패권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과거 여느 때보다 외교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 우선주의, 예측 불가능의 국가로 변신 중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대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있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에 밀착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에 재선에 성공하면서 옛 소련 시절의 강대국 위치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진영논리와 이념적 사고에서 벗어나 합리적 외교 정책, 전문성을 중시하는 인사 정책을 구사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강경파’로 꼽히는 볼턴을 신임 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습니다.

“볼턴의 안보보좌관 내정은 우리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은 아닙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합리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볼턴이 북한을 포함한 모든 외교·안보 문제에 강경한 입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가 안보보좌관에 내정됐다는 것은 한국 정부와 백악관 간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이 미국 강경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북한과 뭔가 타협할 때 미국 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이점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역설적 타협’이란 무엇입니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기존의 의견과 정반대 행보를 보일 때 그 효과가 배가됨을 뜻합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뒤 중국과 전격적으로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죠. 하지만 닉슨 자신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중국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을 끝내고, 데탕트를 조성하려 중국과 타협점을 찾은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너무나 예측 불허해 어떤 상황이 펼쳐진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겁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각각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까.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선 거의 모든 게 거래와 정치적 이해관계의 대상이 됩니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특정 거래, 즉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핵협상을 시작하자는 합의 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면 뭔가 반대급부를 주겠다고 약속하겠죠. 그리고 자신이 ICBM 발사를 중단시켰다고 공적을 내세우려 할 것입니다. 김정은은 매우 용의주도하고, 예상보다 훨씬 계산적인 인물입니다. 북한은 언제나 받을 게 있어야만 움직여 왔어요. 그리고 제네바 합의를 비롯해 핵 관련 합의는 모조리 깼죠. 북한은 중요한 합의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행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쪽이 이런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줄다리기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미 회담이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봅니까.

“네 가지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예 안 열린다는 것, 두 번째는 부분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것, 세 번째는 결렬, 네 번째는 극적인 타결입니다. 두 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30~40% 정도입니다. 첫 번째도 비슷한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연기라는 이름으로 서로 시간을 벌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까.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계속해 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딜레마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북한이 펼치는 평화 공세의 경우 100%는 아니라 해도 큰 틀에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을 완화하고, 한국을 제재 압박의 고리에서 떼어놓기 위해 여러 방법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5·24 조치를 비롯한 각종 제재조치를 풀기 위해 애를 쓸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부딪칠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이 점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선 비핵화가 직접 논의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선 북·미 정상회담에서 훨씬 깊이 다뤄질 겁니다.”

▷미국이 왜 그토록 북한에 CVID 수준의 비핵화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까.

“비단 북한이 ICBM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것이란 위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핵무기 기술과 핵물질이 자칫 국제 테러단체로 넘겨질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CVID는 미국의 핵심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무엇일까요.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입니다. 그 안엔 주한미군 철수와 미군 전략자산 배치 불가론도 함께 포함돼 있죠. 미국과 북한이 제시하는 비핵화의 정의가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아시아보다 중동지역에 외교·안보 정책 초점을 맞춰 왔는데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전망은 어떻습니까.

“유감스럽지만 아직까지 미국은 중동 쪽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미국 언론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아 기사, 특히 한반도 기사의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당분간 이런 기조가 달라지긴 어려울 것 같아요. 한국 정부가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속도를 낸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번 회담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얻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은 남북정상회담에선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미국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점에 자축하지 말고, 아주 냉철하게 임해야 합니다. 이 회담들이 어떤 합의와 결과를 가져오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 한·미 동맹을 비롯한 각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국내 여론을 어떻게 설득하고 화합시킬지 등을 살펴야 합니다.”

■ 한승주 前 장관은…

YS·노무현 정권 시절 외무장관·주미대사로 1·2차 북핵위기 대응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현 외교부 장관)은 외무고시 출신이 아니다. 대학교수로 일한 세월이 훨씬 긴데도 일반인에게 ‘직업 외교관’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지금도 그는 ‘장관님’이란 호칭보다 ‘교수님’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외교관으로 일한 기간은 모두 합쳐 4년가량. 하지만 그 시기가 워낙 민감했다. 1993~1994년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 2003~2005년 노무현 정부의 첫 주미대사로 각각 22개월을 일하며 1, 2차 북핵위기 대처에 깊이 관여했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뉴햄프셔대에서 정치학 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시립대에서 약 8년, 귀국 후엔 고려대에서 약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고려대 명예교수로 강연장에 선다.

키프로스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 서울국제포럼 회장,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삼각위원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부의장, 한독통일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한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글=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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