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대사를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한 것은 외교안보 정책에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신임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볼턴 전 대사 같은 대북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슈퍼 매파’의 득세가 오는 5월 북·미 정상회담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새 변수로 떠올랐다.

◆볼턴 “북한과 평화조약 필요없다”

내달 9일자로 백악관 안보 사령탑으로 일하는 볼턴 내정자는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꼽힌다. 예일대와 같은 대학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를 거쳐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인 2001년 5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담당 차관을 지냈다.
'대북 강경파' 볼턴 앞세운 트럼프… '김정은 압박' 더 고삐죌 듯
그의 대북관은 북핵협상 대표단으로 참가한 2003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볼턴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향해 “폭군 같은 독재자”라고 칭하는가 하면 “북한의 삶은 지옥 같은 악몽”이라고 말했다. 북한으로부터 “그런 인간쓰레기에다 흡혈귀는 회담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 협상단에서 제외됐다.

볼턴은 2005년 8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유엔주재 대사를 지낸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계속 비판했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도와 국무장관, 주한 미국대사 같은 외교안보라인 직책의 유력 후보로 꾸준히 물망에 올랐다.

볼턴 내정자는 최근 북한 비판 강도를 더 높였다. 지난달 27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사행동이 가해질 것이라면 반드시 북한이 미 본토 타격 역량을 갖추기 전이 돼야 한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선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도 없고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북한의 술책에 두 번 다시 빠져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 하고 있구나’라고 판단하면 시간 낭비를 피하고자 아마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북 압박 정책 강화되나

볼턴 내정자는 북핵 해법에 대해 과거 리비아의 핵 폐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리비아는 2003년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뒤 미국이 요구한 검증(사찰)방안을 수용했다.

이듬해 미국은 리비아 제재를 완화하고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핵 폐기를 완료한 2006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북한은 리비아식 선(先) 핵포기를 거부하고 있다. 또 리비아 사례를 핵 포기로 인해 체제 안전을 위협받은 대표적 사례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외교 전문가들은 볼턴 내정자의 등장으로 북·미 간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호주의 브렌던 토머스 눈 미국연구센터 특별연구원은 “볼턴은 자신의 외교정책 관점을 ‘친미국’으로 규정해왔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며 “두 사람 모두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국제무대에서 승리할 미국의 힘과 능력을 제한하는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볼턴은 미국의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산시키기 위해 미국이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네오콘의 일원”이라며 “북핵 문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반면 볼턴이 백악관 안보사령탑으로선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란 반론도 있다. 볼턴 내정자는 이날 “그동안 개인적으로 얘기해 왔던 것들은 다 지나간 일”이라며 “앞으로 내 역할은 정직한 중개인으로서 대통령에게 폭넓은 옵션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