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관련 언급은 없어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90) 씨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 관련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 병문안 "고생시켜드려서 죄송"
문 총장은 이날 오후 공식 일정으로 부산 수영구 '남천 사랑의 요양병원'을 방문해 박 씨를 만났다.

문 총장은 상체를 숙여 병상에 누운 박 씨와 눈을 맞추며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드려서 죄송하다"며 "저희가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긴 세월 고생 많았다.

(검사) 후배들이 잘 가꾸어서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총장의 사과에 박 씨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지난해 2월 요양차 입원한 박 씨는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누워 지내는 상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박 열사의 대학 1년 후배이자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이현주(52·여) 씨는 눈물을 쏟았다.

문 총장은 20여 분간의 병문안 뒤에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문 총장은 "저희는 1987년의 시대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놓고 사회적 격론이 이뤄졌고 대학생의 결집된 에너지가 사회 에너지가 됐다"며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박 열사의) 부친께서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평생 노력을 다 해왔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오늘 저희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 왔다"며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사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대검찰청 관계자를 비롯해 박 열사의 형인 종부(59) 씨와 누나인 은숙(55·여) 씨를 비롯해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세균 회장과 변종준·이강원 이사, 김치하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기획팀장 등이 함께했다.
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 병문안 "고생시켜드려서 죄송"
문 총장은 '시대 사명을 다하겠다는 발언이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분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병문안은 종부씨가 영화 '1987' 개봉 이후 보도된 인터뷰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보고서에서 검찰도 박 열사의 고문치사 축소 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을 밝혔고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문 총장은 이 보고서를 읽어보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박 씨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박 열사의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부원장인 김기동 검사장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종부 씨는 문 총장의 방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방문에 앞서 문 총장은 지난달 초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개인적으로 박씨를 병문안하고 공식 일정을 잡았다.

문 총장은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검찰이 해야 할 구체적 조치가 있었는데, 그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좀 소홀히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여기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균 회장은 "우리 박 열사 아버님께서 평소 갖고 계시던 피맺힌 울분을 풀고 앞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