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도빈스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비핵화 3대 원칙 중 하나인 ‘검증할 수 있는(verifiable)’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중단, 핵시설 폐쇄 등 가시적인 조치들이 더 의미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도빈스 전 차관보는 이날 의회 전문지 더힐 기고문에서 “검증 가능한 비핵화는 미국 협상 대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유럽 담당 차관보 등으로 일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빈스 전 차관보는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것은 단지 김정은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그가 동의한다고 해도 그 합의를 완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와 장소, 그리고 무기급 핵분열 물질 보유량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설령 북한이 아무리 많은 무기를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얼마만큼의 무기가 남아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있을 북한과의 핵 협상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도빈스 전 차관보는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할 만한 거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며 ICBM 발사 중단, 핵시설 폐쇄 등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북한이 ICBM 시험을 앞으로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고, 본토 공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면 동맹국들은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일부 무기를 포기하고 핵실험을 중단함으로써 의심스럽긴 해도 ‘선언된 핵 능력(핵보유국 선언)’이 아닌 것이 된다면 비핵화 규범도 덜 손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정말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와 압박 작전이 효과를 냈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되기까지 계속 압박을 가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