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김여정 오후 일정·펜스 출국 시간 모두 유동적
회담 성사 가능성 열어놓고 조율하다 결국 취소된 듯
'펜스-김여정 회동' 추진 막전막후… 10일 오후 도대체 무슨 일이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서울에 들른 북한과 미국 고위급 대표단 간 회동이 성사 직전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해당 일정이 예정됐던 10일 오후 양측의 행적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북미 회담을 먼저 제안한 쪽은 북한 측이다.

펜스 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북한 측 의사가 개회식 2주 전쯤 미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백악관 측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사를 확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펜스 부통령,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북한 대표단과의 회동을 승인했다.

다만, 펜스 부통령이 8일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일정과 안건 등은 확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미 양측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나섰고, 10일 오후 청와대 내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는 배석하지 않은 채 북미 고위급 대표단이 만나는 데까지 합의했다는 게 WP의 보도 내용이다.

10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일행을 청와대에서 접견한 날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께 청와대를 찾은 김 제1부부장 일행과 2시간 20여 분간 접견과 오찬을 함께했고 김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면담이 끝난 후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오후 9시 10분에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리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를 관람한다고 알렸다.

당시 김 제1부부장이 이 일정에 동참하는지는 발표되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만 서울에 머무르면서 현송월 단장 등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을 격려할 것으로만 알려졌다.

정오께 정부 측이 강릉에서 열리는 통일부 장관 주최 만찬에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지할 때도 김 제1부부장의 참석 여부는 유동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취재하는 기자단 사이에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이 만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나 김 제1부부장은 삼지연 관현악단 격려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 3시께 KTX를 이용해 강릉으로 향해 만찬장과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WP 보도에 따르면 북한 측이 미국 측에 회담 취소를 통보한 것은 예정된 시각보다 2시간 전이었다.

김 제1부부장이 KTX를 탄 시각으로부터 역으로 계산했을 때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북한 측이 미국 대표단을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회담 주선 역할을 한 우리 측은 미국 측에 이런 의사를 전했을 확률이 높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해보면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뤄진 시점까지도 미국 대표단과의 회담을 진행할지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용기 편으로 출국하기로 돼 있던 펜스 부통령의 오후 일정도 유동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이 출국 시각을 파악하고 있을 때 미측 관계자는 'later in this evening(늦은 저녁)'이라고만 확인해줄 뿐 정확한 시각은 공개하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오후 7시에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쇼트트랙 경기를 문 대통령과 함께 관람했다.

펜스 부통령은 오후 11시께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서 떠나는 일정을 바꿔 오후 9시 15분께 강릉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북미 최고위급 회담이 무산돼 쇼트트랙 경기를 관람한 후 인근의 강릉공항을 통해 출국했지만 애초에는 청와대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나는 일정을 고려했던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용기를 이용한 덕에 출국 시각을 정하는 데 제약이 없었던 만큼 펜스 부통령은 오후 일정을 비워놓았다가 북한이 회담 취소를 통보해 오자 출국 시각을 당겨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양측의 10일 오후 행적을 되짚어 보면 결국 북미 간 만남이 불발되긴 했지만 펜스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 모두 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후 일정을 비워놓은 채 고민했다는 흔적이 읽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