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서·특사외교'로 남북 '관계개선' 새 모멘텀 조성
펜스, 김영남과 '조우' 피하며 비핵화 없는 북미대화에 선긋기
日과는 '한미 군사훈련' 두고 충돌…한미일 대북공조 유지할 듯
남북 정상대화 물꼬 트며 '평화 전기' 마련…북미대화 '숙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남측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11일 북측으로 돌아간다.

개막일인 지난 9일부터 2박3일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표단의 방남은 한반도 위기해결의 '가능성'과 '숙제'를 동시에 던졌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일단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외교'와 파격적 방북 초청으로 남북 정상 간의 '통 큰 대화'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성과로 꼽힌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정상 차원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초를 마련한 것은 대립구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평화무드'로 전환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평창 발(發) 남북대화의 '훈풍'을 북미대화로 연결시켜 보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적인 북미관계의 벽을 넘어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 대표로 파견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방한기간 북측 대표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북미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북한 대표단도 북핵문제와 북미대화에 대해 아무런 변화된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앞으로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서 '대화의 싹'을 틔워보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 행보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 정상대화 물꼬 트며 '평화 전기' 마련…북미대화 '숙제'
◇ '메신저' 김여정이 든 친서…남북 정상 첫 '간접 대화' =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접견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서 김 제1부부장이 전한 이 친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겼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김 제1부부장의 입을 통해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내 평양으로 초청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내놨다.

김 위원장이 2012년 자신의 통치 체제를 구축한 뒤로 남한 최고지도자를 평양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건이 갖춰지고 전망이 선다면 언제든지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만큼 방북을 제안받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한반도 평화구상' 드라이브를 거는 데 있어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방남을 계기로 보수정권 9년간 사실상의 '결빙상태'를 보여왔던 남북 사이에서 정상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의 틀을 바꾸고 이를 토대로 한반도 정세 흐름을 대화국면으로 바꿔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 참석과 경기·공연 관람을 통해 남북간의 '정서적 이질감'을 상징적 차원에서 좁힌 것도 의미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9일 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과 다음날 청와대에서의 접견·오찬에 이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여정 제1부부장과 함께하며 북측 고위급 인사와의 '스킨십'을 늘렸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전 세계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기 깃발 아래 남북 선수단이 동시 입장했고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16년 만에 열린 방남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남북 정상대화 물꼬 트며 '평화 전기' 마련…북미대화 '숙제'
◇ 美 펜스의 의도적 北회피…여전히 먼 '북미대화' =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은 남북 간의 거리를 좁히며 한반도에 훈풍을 일으켰지만, 북미 대화로까지 연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하는 자리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책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무대로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자리를 같이하는 만큼 이를 향후 북미대화의 모멘텀으로 삼아달라는 우회적 주문이었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개막식 당일인 9일 오후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모이는 사전 리셉션에서 '조우'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은 동맹인 미국의 '비토'로 벽에 부딪혔다.

펜스 부통령은 9일 문 대통령이 주최한 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 늦게 입장해 김 상임위원장을 외면한 채 다른 국가의 정상급 인사들과 악수하고 행사장을 떠났다.

펜스 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김 상임위원장과의 만남을 회피한 것은 북미대화의 신호탄으로 읽힐 만한 여지를 차단하고, 앞으로도 북한을 향해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이어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문제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초청 제안에 따라 문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면 북미대화를 수반하는 최소한의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바꿔말해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북미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여야 남북 정상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한반도 정세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에 조금의 진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정상회담을 추진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소지가 크다.

비록 이번 평창올림픽을 무대로 한 북미접촉이 불발됐지만, 북한 최고지도자가 방북 초청을 함으로써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다시금 새롭게 '중재 외교'에 시동을 걸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정상대화 물꼬 트며 '평화 전기' 마련…북미대화 '숙제'
◇ 한일정상 충돌 변수…미일과 '제재공조' 유지하며 '대화모멘텀' 살리기 = 이번 올림픽을 거치며 한일관계의 급격한 경색이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한반도 평화외교'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 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미 군사훈련 문제를 놓고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한미 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될 때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나 이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대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우리 정부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고,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일 3국간 공조에도 일정 정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양국 정상의 이 같은 갈등은 '평창 이후'의 한반도 상황관리과 정세운용의 방향을 놓고 서로 상이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차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외교' 흐름에서 소외돼있던 일본은 '북한의 미소외교에 시선을 뺏겨서는 안 된다'면서 남북대화 분위기를 경계하고 대북 제재·압박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해왔다.

이는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대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한반도 평화 구상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흐름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앞으로 일본이 미일동맹의 틀을 활용해 미국과의 대북 '압박공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베 총리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펜스 미국 부통령도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경제적·외교적으로 북한을 계속 고립시킬 필요성에 대해 미국과 한국, 일본은 빛 샐 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공조전선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대북 압박·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북한이 대화기조의 이면에서 또다시 추가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제재의 끈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변함없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 대통령으로서는 과도한 대북 제재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일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상황 관리와 평화 무드 조성을 위해 대화에 나설 것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미일과 적절한 수준의 '압박공조'를 유지하면서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대화의 모멘텀이 상실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