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은 대표적인 졸속 입법 사례로 꼽힌다. 이 법안은 제출 4개월 만에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부작용 우려로 1년간의 적용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말 재개정되는 운명을 맞았다. 전안법은 기존 ‘전기제품 안전관리법’과 ‘공산품 안전관리법’을 통합한 법안이다. 법안 내용을 전부 수정하는 ‘전부 개정안’이어서 공청회를 열어 법안 부작용에 대한 의견 수렴이 필요했지만 이 과정을 생략하면서 결과적으로 후폭풍을 낳았다.

전안법은 두 법안을 합치면서 안전검사 대상을 전기제품에서 공산품까지 통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의류와 액세서리 등의 공산품도 전기제품과 동일한 안전 기준을 적용받으면서 소상공인이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전안법이 상정된 2015년 11월17일 19대 국회 제337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홍영표 산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이 “(전안법은) 전부개정법률안이므로 국회법 제56조 제6항에 따라 원칙적으로 공청회를 해야 하는데 공청회를 못 했다”며 “공청회와 관계없이 일단 심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이견 없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정부 입법이기 때문에 입법예고와 공청회, 규제 심사, 관계 부처 의견을 다 듣고 통과된 법안”이라고만 설명했다. 법안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한 의원은 법안 내용을 읽고 “복잡하네”라고 했고, 다른 의원은 “이게 뭐 기존의 업체가 여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간명하게 법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전안법 처리과정은 국회의 졸속 심사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시 전안법과 함께 심사된 법안만 46건이었다. 산자위 회의 속기록 70쪽 중 전안법 관련 논의는 8쪽에 불과했다. 국회는 전안법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인증 대상에서 영세 소상공인을 제외하는 ‘전안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말 임시국회에서 급히 처리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