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홈페이지는 12일에도 가상화폐 관련 청원으로 들끓었다. 이날 하루에만 1000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방침을 밝힌 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자 투자자들이 이틀째 익명의 온라인상에서 똘똘 뭉쳐 정치세력화하는 양상이다. 박 장관 해임을 요구하는 청원도 수십 건 올라왔다.

"댓글 먹혔다"… 정치세력화하는 가상화폐 투자자
11일 정부는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박 장관이 거래소 폐쇄 방침을 언급한 지 몇 시간 만에 청와대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박 장관의 발언이 청와대와 부처 간 충분한 조율 없이 나온 ‘실언’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12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움직임을 보면 여론과 이익집단, 특히 20~30대 핵심 지지층 요구에 너무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거래소 폐쇄’ 방침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의 언급(입장)은 없다. 부처에서 확인할 사안”이라고 했고, 민주당 지도부도 “조만간 당정협의를 할 것”이라고만 했다. 여론을 의식한 당청의 ‘침묵’은 정책 불확실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자들은 인터넷 카페와 단체 카카오톡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자 상당수가 20~30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과 겹치는 점도 부담이 되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이 지난해 11월 이용자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와 30대가 60% 가까이 됐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정책 혼선은 여론을 너무 중시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의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통을 강조하며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중시해 온 문재인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 정책에선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민의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좋지만 민의가 잘못된 것이라면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국익보다 일부 개인의 이익에 국가 정책이 휘둘린 사례”라고 말했다.

유승호/박신영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