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9시30분 조선중앙TV를 통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방송은 사전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9시30분 조선중앙TV를 통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방송은 사전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올해로 집권 7년차를 맞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1일 공개한 육성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남 대화 제의, 미국엔 핵 공격 위협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들고 나왔다. ‘평창올림픽 참가 용의’와 남북대화를 언급하며 우리 정부에 ‘평화 공세’를 취한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TV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사전 녹화한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 낭독 장면을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30분간 방영했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6년째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는 지난해 검은 양복을 입고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고개 숙인 자아비판’을 했던 것과 달리, 올해엔 밝은 은색 양복을 입고 신년사 낭독 내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유례없는 대남 유화 메시지

미국엔 핵 위협, 남한엔 대화 손짓… 김정은 '통남봉미'로 출구 찾나
신년사에서 가장 주목된 부분은 핵·미사일 관련 목표 제시와 대남·대미 메시지가 예년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주장한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 생산해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며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이 결코 위협이 아니라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신년사의 약 3분의 1이 남북관계에 할애됐으며 역대 신년사 가운데 가장 앞선 표현들이 등장했다.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 등과 같은 유화적인 언어를 썼다.

다만 김정은은 “이 땅에 화염을 피우며 신성한 강토를 피로 물들일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며 한·미 군사훈련 및 미군 전략자산 배치 중단을 요구했다. 아울러 “남조선 당국은 북남관계 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청탁해야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외세에 간섭의 구실을 주고 문제 해결에 복잡성만 조성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동맹 흔들기 의도”

통일부는 이날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핵무력 완성’ 성과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내는 경제 활성화, 대외는 남북관계 개선 돌파구 마련에 중점을 뒀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통남봉미로 전략을 선회해 제재 국면의 출구를 찾으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당장 미국과의 직접 대화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는 대립각을 계속 세우는 반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경협 재개, 인도적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자는 이야기인데, 우리 정부가 이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비치면서 남측에 적극적으로 나온 것 같으며, 이것이 우리에겐 기회이자 위기가 될 듯하다”며 “미국이 그냥 보고만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평창올림픽 참가 문제 논의를 위한 남북당국 회담이 성사돼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 김정은 신년사 주요내용

▶핵무력 완성 선언
- “작년은 영웅적 투쟁과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자평
- 핵실험 및 ICBM 개발 성과 강조
- 군수공업 부문의 자체 생산구조 확립

▶대미 결사항전 의지 강조
- “핵 단추가 내 사무실에 있다” 고 위협
- 핵탄두와 미사일의 실전배치에 박차
- 실전 대비 전투훈련 강화

▶남북관계 개선
-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용의
-“남한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대화 가능”
-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요구
- 남북대화 통해 통일 분위기 조성

▶핵과 경제 병진노선 재확립
-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성과 홍보
-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 강화에 총력
- 역경 속에서도 사회주의 위업 승리 달성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