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요소가 섞인 혼합경제체제 특징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특징은 1948년 제헌 당시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됐다.

[2018 제헌 70년] "소수 대기업 제외하곤 모두 국가가 보호", 시시콜콜 정부개입… 30년된 헌법 경제조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당시 한국인에겐 생소한 개념이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공황 여파로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혼합경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더구나 정부 수립을 놓고 정치 세력 간 투쟁이 극심했고 38선 이북엔 공산주의체제가 들어섰다. 이런 배경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헌법에 담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런 특징은 현재 헌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외에도 여러 조항을 통해 정부의 시장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헌법 제123조는 가장 광범위한 시장 개입을 규정한 조항으로 꼽힌다. 123조 1항은 국가가 농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농어촌 종합 개발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2항에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역경제 육성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 3항은 중소기업 보호·육성, 4항은 농수산물 가격 안정을 통한 농어민 이익 보호, 5항은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124조는 국가가 소비자보호운동까지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헌법에 따르면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경제주체를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이상 자유 경쟁과 혁신을 저해해 중소기업과 농어업 발전을 막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국가가 대외무역을 육성하고 무역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제125조는 수출 주도 산업화를 추진하던 개발 경제 시대 유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헌법 제120조는 주요 자원의 개발과 이용을 국가가 허가하도록 하고 있다. 전력 광물 등 자원 관련 산업에서 공기업이 독과점체제를 형성하게 된 근거 조항이다. 국가가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 제32조 1항도 시장 개입 조항으로 꼽힌다. 최저임금제도 이 조항에 들어 있다. 민 교수는 “헌법이 국가의 의무를 시시콜콜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언제든지 포퓰리즘 정책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시장 개입 여지를 어떻게 줄일지에 개헌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경제 원칙을 담고 있는 제119조 1항마저 표현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해당 조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돼 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사유재산 제도와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