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미국·중국 균형외교, 우왕좌왕하다 설자리 잃을 것"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69·사진)은 25일 “외환위기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큰 위기”라고 말했다. 2007년 설립된 니어재단이 10년간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모은 《동북아시아의 파워 매트릭스》를 발간한 뒤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선 한반도’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니어재단이 작년 4월 처음 한·중·일의 외교·안보 석학들을 모아 연 연례 포럼인 ‘한·중·일 서울 프로세스’에서 발표된 내용을 중심으로 엮었다.

정 이사장은 “한반도 최대 위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때 다들 힘들었다고 해도 국민이 힘을 모아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우리 스스로 극복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조하며 미국과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외교’를 하겠다지만 결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뿐 제대로 설 땅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이사장은 그럴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중국을 꼽았다. 그는 “중국은 지켜야 할 국토가 크고 먹여 살려야 할 국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철저히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중국이 국제공존을 중시하거나 다른 나라를 배려할 국가로 여기고 있다는 게 정 이사장의 판단이다.

그는 “지난 15년간은 중국도 ‘해양국가’를 지향하며 세계적인 가치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올해 시진핑 2기 체제에 진입하면서 ‘대륙국가’를 천명하고 내부 정치에 함몰돼 있다”며 “보수로 회귀하고 있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예전엔 중국이 한국 뒤에 있는 미국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미국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국을 함부로 대한다”며 “우리는 이런 ‘차이나 스탠더드’를 잘 몰라 중국에 계속 덜미를 잡히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 이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한·중·일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처럼 한·중·일 관계가 한·미 관계나 한·중 관계에 종속변수로 있으면 한국의 독자적 영역을 찾을 수 없다”며 “세 나라가 과거 역사에 대해 화해하고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 이전에 먼저 한·중·일을 묶어 생각해야 동북아시아의 생존과 한반도 통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나 중국 모두 개별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쳐 있다”며 “미국과 북한 간에 좀 더 티격태격하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대화 국면인 ‘진실의 순간’이 올 텐데 그때 가서 전쟁이냐 평화냐를 가르는 변수는 한·중·일 관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이사장은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2004년 옛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영입됐지만 노무현 정부와 자주 마찰을 빚다 2007년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동북아를 연구하는 니어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