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권익위 결정 존중"…총리는 공식언급 없이 우회적 심경 표출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농축수산품 선물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작업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개정 의지를 표명해온 이낙연 국무총리는 28일 매우 우회적인 방식으로 불편한 심경의 일단을 드러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가상통화 투기 적극 대처, 사회적 참사특별법 후속대책, 고교생 현장실습 개선대책 마련, 취약계층 지원사업의 양극화 문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지시와 당부를 내놓았으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총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은정 권익위원장에게 사무적인 어조로 "청탁금지법과 관련해서 한 말씀 하시라"고 발언권을 줬다.

이에 박 위원장이 전날 전원위원회에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일컫는 이른바 '3·5·10' 규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부결된 상황을 설명했다.

곧바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온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불만을 나타내자 이 총리가 "여기서 논쟁할 사안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해 더는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총리가 박 위원장에게 발언권을 준 행위 자체가 불편한 기류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총리는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청탁금지법에 대해 "수정 검토를 할 때가 됐다"고 답변했고, 취임 후 수차례 공식 석상에서 개정 필요성을 피력했다.

지난 9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석맞이 직거래장터에서는 "(청탁금지법 개정을 위해)김영록 농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거의 독립 투쟁하다시피 뛰었다.

가능만 하다면 올 추석과 같은 어려움을 내년 설에는 농어업인 여러분께 드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했고, 다음날에는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를 맑고 밝게 만들면서도 농어민 등 서민 살림을 위축시키지는 않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권익위가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품에 한정해 1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14일 보고하자 19일에는 농산물 유통현장을 점검하면서 "늦어도 설 대목에는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개정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이 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행령 개정안이 권익위 전원위를 무난히 통과해 29일 '청탁금지법 대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은정 위원장이 국회 정무위 출석을 이유로 전원위에 불참하고, 판사·변호사 등 외부위원 대다수가 "시행한 지 1년밖에 안 된 청탁금지법에 손대지 말자", "한 번 손대면 개정요구가 잇따른다" 등의 논리를 내세워 반대표를 던지면서 참석자 12명 가운데 찬성 6명·반대 5명·기권 1명으로 찬성이 절반을 못 넘어 부결됐다.

박 위원장이 전원위에 불참한 것 자체가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외부 위원들의 반대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당연히 통과될 줄 알고 불참하는 '실책'을 저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권익위의 독립적 결정이니 존중한다"고 밝혔다.

'대다수 국민이 개정을 원하는가'라는 의문이 큰 상황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보완하지 않고 권익위 전원위에 재상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