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매우 낙담"…회항 후 1시간 더 기다리다 포기
기자단에도 함구하다 막판 'DMZ'라 적힌 쪽지 보여주며 '철통보안'
DMZ 코앞서 되돌아온 트럼프… "강한 동맹 상징이었는데"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무장지대(DMZ) 동반 '깜짝 방문' 무산에 큰 실망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동행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낙담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과 CNN방송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외신과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께 숙소를 출발해 용산 미군기지에서 미 대통령 전용 헬기인 '마린원'을 타고 55㎞가량 떨어진 DMZ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 사령관 등을 태운 VH-60Ns 기종의 마린원 2대는 물론 수행원과 취재진, 경호인력을 위한 시누크 헬기 3대가 동원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올렛 초소를 찾아 문 대통령과 한미 안보동맹을 과시하고 북한에 무언의 경고를 보낼 예정이었다.

이 초소는 직전 3명의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8분을 날아가 목적지로부터 5분 이내 거리까지 도달한 마린원은 안개가 낀 악천후 탓에 기수를 돌려야 했다.

조종사들이 주변의 다른 헬기를 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시거리가 좁아져 비행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DMZ 인근에는 안개 탓에 가시거리가 1마일(1.6㎞)에 불과했다고 AP가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은 "군과 비밀경호국은 착륙하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용산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DMZ 방문을 곧바로 단념하지 않고, 방탄 차량에서 1시간 가까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오전 9시께 결국 포기 결정을 내려야 했다.

국회 연설과 중국 방문 등의 남은 일정을 미룰 수가 없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 시도는 안전을 이유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당초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5개국 순방에 관한 사전 브리핑에서 일정상 DMZ 방문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DMZ 대신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만 들를 것이라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었다.

백악관은 방한 일정을 동행 취재 중인 미국 기자 13명에게 전날까지도 "내일 아침에는 푹 잘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가, 밤 11시30분께 장소를 밝히지 않은 채 "내일 오전 5시45분쯤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공지를 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아침 기자들과 만난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가 가는 곳은 이곳"이라며 'DMZ'라고 적힌 메모지만 보여주고, 장소를 소리 내 읽지 않을 정도로 보안 유지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날 DMZ 깜짝 방문이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밝혔지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DMZ행(行)은 아시아 순방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예정돼 있었다고 샌더스 대변인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놀라게 될 것"이라며 깜짝 방문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전날 문 대통령과의 만찬에서도 "우리는 내일 여러가지 이유로 신나는 날을 보낼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며 군불을 지폈다.

'깜짝쇼'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 자신의 대선 승리 1주년과 겹친 이번 이벤트를 통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코앞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한미 정상의 결속력을 과시하고 북한에 압박성 메시지를 주려고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동반 방문을 시도한 취지에 대해 샌더스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역사적인 일로 강한 동맹의 상징이 될 예정이었다"며 "두 정상이 함께 계획했다는 사실이 그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항으로 역대 미 대통령이 거의 빠짐 없이 DMZ를 찾아 단호한 대북 결의를 보여주는 전통을 잇지 못하게 됐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미 대통령이 DMZ를 방문해 현장을 시찰해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