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여덟 대의 전투기가 하늘을 가른다. 서로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며 고공과 저공비행 묘기를 선보인다. 낙하하듯 급강하하다 갑자기 솟아오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색색의 비행기 구름 무늬가 그려지고, 태극 문양이 수놓일 때면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블랙이글스는 항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특히 ‘항공 덕후(항덕)’라 불리는 항공기 애호가들 사이에선 다음달 17~22일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서울 국제 ADEX 2017’(서울에어쇼) 등 블랙이글스 국내 일정을 일일이 쫓아다니는 ‘사생팬’까지 있을 정도다.

이 팀의 정식 명칭은 ‘제53특수비행전대’로 공군본부 직할 부대다. 강원 원주 제8전투비행단에 주둔하고 있으며, 공군 내에서 내로라하는 최정예 조종사로 구성됐다. 전대장과 대대장, 조종사 8명, 훈련조종사 2명, 정비대대 등이 한식구로 지내고 있다.

‘잘생기고 자존심 센 빨간 마후라’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조종석에서 땅으로 내려온 블랙이글스 구성원들의 모습은 생각 외로 평범했다. 그들은 비행술이 아니라 팀워크를 자랑했다. 훈련이 끝난 뒤 퇴근해서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아버지이자 아들들이었다. 조종사들의 표정은 수줍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결코 수줍지 않았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생명

블랙이글스의 전적은 화려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항공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수비행팀으로 활약하며 각종 에어쇼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2012년엔 세계 최대 군사 에어쇼인 영국 워딩턴 국제에어쇼와 리아트 국제에어쇼에서 각각 대상을 수상했다. 그 후 싱가포르 에어쇼를 비롯한 유수의 해외 에어쇼에서 한국 공군의 뛰어난 비행 기량을 과시해오고 있다.

블랙이글스의 전대장을 맡고 있는 김영화 대령(47·공사 41기)은 “블랙이글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인기가 아니라 팀워크”라고 강조했다. 그는 블랙이글스에 몸담은 게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조종사로, 두 번째는 대대장으로, 세 번째는 전대장으로 왔다. 그는 “이것도 운명인 것 같다”며 “공군 최고의 멤버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기쁘지만 이들을 책임진다는 건 매일 심장이 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人사이드 人터뷰>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한치 실수도 용납 않는 에어쇼, 내 앞의 동료만 믿고 비행하죠"
“사람들은 에어쇼를 하는 블랙이글스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합니다. 그런데 그 조종기술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해요. 마치 자동차를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조수석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지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조수석에 앉았을 때 운전자 실력이 미숙하면 아주 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래서 행사를 준비할 때도 얼마나 화려한 공연을 펼치느냐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하느냐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블랙이글스는 팀원 선발 시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영입 대상은 여러 기종의 전투기를 ‘조종스틱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다뤄본’ 비행시간 800시간 이상의 교관급 베테랑 조종사다. 먼저 조종사들의 리더인 1번 전투기 담당 조종사는 성적 상위 10% 안에 들어야 한다. 나머지 조종사 역시 성적 상위 3분의 1에 들어야 한다.

성적이 된다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전화를 통한 면접 후 기존 팀원에게서 만장일치를 받아야만 비로소 블랙이글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김 대령은 “어찌 보면 고루한 전통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모두 팀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특수비행이 워낙 고난도이다 보니 팀원들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탄탄하게 비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블랙이글스 조종사의 근무 연한은 3년6개월이다. 전대장과 대대장은 통상적으로 1년(연장 가능)이다. 블랙이글스의 대대장인 김대은 중령(41·공사 46기)은 “우린 공군의 홍보대사란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며 “국내 행사뿐만 아니라 세계를 돌며 우리 공군의 실력을 본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면 팀원들 모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비행 성공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

블랙이글스는 8명이 하나의 편대를 이룬다. 리더인 1호기를 중심으로 2~8호기까지 각자 맡은 위치가 정해져 있다. 한 번 맡은 위치는 변하지 않으며, 해당 위치를 담당하는 조종사의 근무 기한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후임 조종사를 정해 1 대 1 방식으로 훈련시킨다.

조종사들이 블랙이글스에 자원하게 된 동기도 매우 다양했다. 1호기를 맡은 리더 이규원 소령(38·공사 51기)은 “3년6개월이란 시간 동안 내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로 후회하지 않을 임무를 맡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2호기 담당인 서동혁 소령(35·공사 55기)은 “지원할 자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팀원이 된 뒤 단 한 번도 잘난 척하며 목에 힘준 적이 없다”고 했다. 4호기 조종사인 김창건 소령(36·공사 53기)은 “이곳에 온 걸 후회하거나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 조종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내가 비행하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워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5호기 조종사 남기채 소령(34·공사 54기)은 “지금은 모든 전투복에 태극기가 붙어 있지만 내가 이곳에 지원하던 2015년만 해도 공군에서 군복에 태극기를 붙일 수 있는 곳은 블랙이글스뿐이었다”며 “그것을 동경해 블랙이글스에 세 번 도전 끝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6호기를 맡고 있으며 소령 진급을 앞둔 김정현 대위(32·학사 120기)는 “공군에 입대한 뒤 이곳을 알게 됐고 에어쇼를 보고 블랙이글스에 들어오겠다는 목표가 생겼다”며 “가족과 오래 같이 있지 못하는 게 미안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7호기 조종사인 신태웅 소령(34·공사 55기)은 “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라 하더라도 에어쇼만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매력을 느꼈다”며 “전문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8호기 조종사이자 소령 진급 예정자인 강성용 대위(33·공사 56기)는 “우린 우리 자신을 위해 빛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팀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리더인 이 소령은 “내 앞의 조종사가 날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서로를 살린다”며 “나로선 한 명 한 명 안전하게 퇴근시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게 진정한 작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솔직히 에어쇼로 인해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훨씬 많다”고 털어놨다.

“블랙이글스에선 지금까지 세 명의 조종사가 순직했습니다. 1998년 순직한 조원훈 중령, 2006년 5월5일 어린이날 에어쇼에서 순직한 김도현 소령, 2012년 추락사로 순직한 김완희 소령입니다. 완희는 저와 동기였습니다. 항상 제게 말했죠. 팀원을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이죠.”

“세일즈맨도, 곡예단도 아닌 군의 이름으로”

블랙이글스 팀원들은 한목소리로 “우린 전투기 세일즈맨도 아니고 곡예단도 아니며 자랑스러운 공군”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령은 “사람들은 우릴 보고 그저 ‘작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곡예비행단’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데 이 점이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또 “세계 각국에서 공군 내 특수비행팀을 두는 건 결국 자국의 국격과 군의 능력을 격상하기 위한 것”이라며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보면서 이것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령은 “우린 최고가 아니라 하나 됨을 먼저 추구한다”며 “최고가 돼야 함을 강조하다 보면 욕심이 과해져 자칫 인명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겸손함과 신뢰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까지 블랙이글스를 이끌어왔고, 앞으로 후배 조종사들도 그 정신을 더욱 크게 빛내리라 생각합니다.”

■ 블랙이글스의 역사

1953년 블랙이글스가 탔던 F-51 무스탕.
1953년 블랙이글스가 탔던 F-51 무스탕.
1953년 美 무스탕으로 첫 비행…현재 국산 T-50으로 전세계 누벼

공군의 특수비행은 1953년 6·25전쟁이 끝난 뒤 4대의 ‘F-51 무스탕’으로 사천 비행장에서 시범비행을 선보인 게 시작이었다.

1962년 ‘블루 세이버(Blue Sabre)’란 이름으로 국군의 날 행사 때 특수비행을 했다가 1967년 F-5로 구성된 블랙이글스 팀이 창설됐다. 서울 여의도 공군기지의 경기 성남 이전 및 군 대비태세 증강 등 이유로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잠정 해산됐던 블랙이글스는 1994년 ‘A-37B’ 기종으로 운용되는 상설팀으로 재창설됐다. 2007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으로 기종을 전환하기 위해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9년 블랙이글스 전용으로 T-50을 개조한 ‘T-50B’로 기종을 변경했다. 2013년 4월 공군본부 직할부대로 독립해 제53특수비행전대로 승격됐다.

매년 30~50회의 국내외 행사에서 특수비행을 하며 공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중에게 공군 이미지를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 주 임무다. 고난도의 비행 퍼포먼스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군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고, 새로운 공군 인재를 영입하고자 하는 홍보 목적도 있다.

비행 안전과 조종사 신변 보호상 지켜야 할 규정이 많다. 우선 비행 전날엔 조종사들의 음주와 밤새우기가 금지된다. 일몰 시각 1시간 전에 모든 비행 일정을 마쳐야 한다. 주말에 행사를 나갔다면 다음날 평일은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 한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에어쇼 예정 장소에서 공연 시작 최소 1~2시간 전부터 예행연습을 한다.

원주=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