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정치 view] '대결 프레임'에서 한치도 못 벗어난 우리 정치
우리 정치가 ‘대결 정치’라는 과거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 대신 높은 국민 지지율을 앞세운 여론 정치에 기대고, 여당은 야당에 양보하고 설득하기는커녕 야당을 자극하며 대립각을 세우기 일쑤다. 야당은 대통령의 독주를 막겠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기국회 벽두부터 정치는 실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코드 인사’ 비판에도 이념 성향이 뚜렷한 인사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실패는 돌발 상황이 아니었다. 지명 때 이미 예견됐다. 야 3당이 이념 편향성을 지적하며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인준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권이 지난 3개월간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당조차 설득하지 못해 당·청 갈등을 자초했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의 이념 편향성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비슷한 논란이 예상되는 후보자들을 헌법재판관과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다. 높은 국민 지지로 야당의 반발을 넘어서겠다는 여론 정치가 자리하고 있다. “(장관 임명에 대한)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며 야당 반대 속에서 밀어붙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의 연장선상이다. 청와대는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당초 이번주 예정된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을 ‘없던 일’로 했다. 강 대 강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력 부재를 드러냈다. 인준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때 자당 의원들 동원에 실패한 데 이어 김이수 후보자 표결에서도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책임이 큰 데도 자성의 목소리는 희미하다. 야당을 비난하는 목소리 일색이다. ‘대선 불복’ 얘기까지 나왔다. 정국 운영의 필수조건인 협치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시급한 안보와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각종 개혁입법, 예산안 등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절실함에도 ‘적폐연대’ 등 원색적인 용어로 야당을 자극해 당장 김명수 후보자 인준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야당의 반대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자유한국당은 MBC 사장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곧바로 국회를 보이콧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국회 보이콧만 세 번째였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지난 한 주 동안 대부분의 의사일정에 불참했다. 대신 주말에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김명수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김 후보자는 낙마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당내에 공공연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지지율이 10%대에 묶여 있다.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국민 인식이 여전해서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