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전 ICC 소장 “김정은 이름 석 자, 유엔 결의안에 포함돼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진짜 효력을 얻으려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름 석 자가 반드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북한을 흔드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76·사진)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 통화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2002년 설립된 ICC는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세계 최초의 상설 국제법정이다. ICC의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됐던 송 전 소장은 2009년부터 지난 3월까지 6년간 ICC 소장을 맡았다. 현재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유엔 안보리는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11일 오후 6시)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한 신규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대북 원유수출 전면 금지가 관철되지 못했고, 김정은을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자산동결을 비롯한 제재 조치를 하려다 결국 무산됐다. 그 때문에 핵무기 보유를 추구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긴 어려우리란 게 대체적 평가다.

송 전 소장은 “김정은은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서 떠받들어지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김정은의 이름이 포함된다면, 북한의 권력 유지층에 매우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당초 결의안 초안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괜히 제재 대상으로 기재한 게 아닙니다. 이런 효과를 노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도발이 여기서 멈출 것 같습니까? 김정은 정권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할 겁니다. 아마 그 땐 유엔이 지금보다 더 벌집 쑤시듯 시끄러워지겠죠.”

송 전 소장은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단순히 지정학적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적 해결 과제로 격상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냉엄한 국제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유엔 안보리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내기란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북핵 문제가 그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위협이 되는 인류 공통의 문제임을 각인시키는 건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 “이를 위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영향력 있는 한국 인사들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 전 소장은 “북한이 완전히 고립됐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선 여전히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 많이 있고, 이 나라들이 유엔에서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며 “북한이 이런 국가들에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엔이 비록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지 못한 게 현실이라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은 분명 국제법상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의안을 이행하기 위해선 각 회원국들이 책임을 져야 해요. 유엔이란 틀 안에선 강대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명분상으로 똑같은 비중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북한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손을 놓아버리기보단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외교 역량입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