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바람' 꺼질 줄 알았다…盧·鄭 단일화는 막장극"
"박정희, 나라 바꾼 경세가…역설적으로 한국 민주화 열어"
이회창 "YS에 애증 엇갈려… DJ는 실패한 정치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2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전직 대통령들과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이들에 대한 개인적 평가도 가감 없이 밝혔다.

책에는 자신을 정치에 발 담그게 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 "감사원장직 수락은 운명의 갈림길…YS에 애증 엇갈려"
이 전 총재는 특히 1993년 대법관으로 있던 자신에게 감사원장직을 제의, 결과적으로 정치권으로 입문케 한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뒷이야기를 술회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이 전 총재는 "나는 그날 그의 말을 듣고 허풍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의 풍모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략) 그는 동물 같은 정치적 후각을 가졌으면서도 약간의 이상주의자적 면모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었다"며 YS에 대한 첫인상을 설명했다.

그는 훗날 역경의 정치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 바로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에 오른 데서부터 비롯됐다고 했다.

그는 "이 결단은 나에게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이 결단으로 나는 김영삼이라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역인 한 사람과 참으로 굴곡 많고 애증이 엇갈리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라고 적었다.

감사원장으로 있을 당시 YS가 대법원장직을 두 번이나 제의했다가 번복한 것을 두고는 몹시 언짢았지만 돌이켜 보면 당시 원망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전 총재는 1994년 YS와의 갈등 끝에 당시 국무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의 과정도 상세하게 그렸다.

자신의 사퇴 이후 정부·여당이 보인 행동과 YS가 퇴임 후 낸 회고록에서 자신을 '비하'한 데 대해서는 매우 격앙된 목소리도 냈다.

그는 "나는 때때로 그와 충돌했고 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 했으며, 여당 대표로 있을 때는 당 총재인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사퇴 이후 청와대 및 민자당 측에서는 (중략) 별의별 유치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중략) 그때의 비방,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쓰레기 같은 모략 중상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나를 배신자라고 비난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소신 때문에 대립한 것을 배신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사실과 다른 회고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꾸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이것은 나의 명예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해두려 한다"고 강조했다.

◇ "DJ는 실패한 정치인…DJP연합은 신묘한 수"
15대 대선에서 자신에게 1.6%포인트차 석패를 안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DJP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권이 대한민국에 과연 무슨 기여를 했나"라며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 이른바 진보정권·좌파정권이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DJ정권은 결코 성공한 정권으로 볼 수 없다"며 "반세기 만에 진보·좌파 정권을 쥐어본 국민에게 무능함과 무책임함만을 각인시켜줬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는 이어 "DJP연합은 야합이지만 선거에 이기는 신묘한 수임은 틀림없고 나는 완벽하게 패한 것"이라면서도 "선거에 이기기 위한 야합이 정권에 부담되거나 족쇄가 되고 국정 수행에 지장을 받았다면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냐"라고도 했다.

그는 "김대중 후보는 임기를 포기하고 내각제로 개헌할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김종필 총재를 속인 셈"이라며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노무현 바람' 곧 꺼질 줄 알았다…盧·鄭 단일화는 막장극"
이 전 총재는 대권 문턱에서 또 한 번 무릎 꿇게 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썩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절치부심 끝에 대세론을 등에 업고 16대 대선에서 낙승을 기대했던 그는 이른바 '노무현 바람'에 다시금 쓴잔을 들어야 했다.

이 전 총재는 "뒤늦게 정치권에 들어온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치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그 연륜에 알맞은 기반을 잡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변방으로 돌며 전두환 전 대통령 청문회에서 보듯이 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정치를 해온 것으로 보았다"며 "이런 사람은 대체로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때 민감하게 이에 편승해 부상하는 데 능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것은 노무현 후보를 잘 모르는 제삼자의 관찰이므로 잘못 본 것일 수 있겠지만 당시 나는 '노무현 부상 현상'은 조만간 깨질 바람이라고 보았다"고 회상했다.

노무현 후보가 당시 대선을 코앞에 두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한 것을 두고는 정치공학적 야합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로 다른 두 당의 후보가 오로지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기 위해 단일화한다는 것은 선택권자인 국민의 판단 기준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고 정당주의 원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라며 "바야흐로 정치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막장극으로 치닫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그러면서 "불리한 처지에 있던 노무현 후보는 건곤일척 모험수로 정 후보와의 TV토론과 여론조사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적중했다"며 "마치 돈을 잃고 있던 도박사가 모든 것을 한판 승부에 걸어 도박판을 휩쓰는 것과 같았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모험과 승부에 열광했고 대역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이 전 총재는 정몽준 당시 대선후보에 대해서는 "자신은 인식했는지 모르나 한때 후보교체에까지 몰린 노 후보를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시대변화의 상징처럼 떠오르게 한 훌륭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 "박정희, 나라 바꾼 경세가…역설적으로 한국 민주화 열어"
이 전 총재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매우 후한 평가도 곁들였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의 기초와 골격으로 하드웨어를 세웠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그 안에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경제성장으로 소프트웨어를 채운 대통령"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단순히 권력을 향유하는 데 그친 정치군인이 아니라 나라를 바꾼 경세가(經世家)였다"고 적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개발독재 지도자들이 흔히 택하는 국가통제 경제나 국유화 경제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이승만 정권이 정립한 자유시장경제의 기초 위에서 근대화, 산업화를 추구했다.

특히 경제발전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화 시대를 열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라를 건국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낭떠러지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해낸 지도자"라며 "대한민국의 안전과 미래를 통찰해 (한미) 동맹의 울타리를 쌓은 공로는 어떤 이유로도 폄하될 수 없다"고 그는 평가했다.

다만, 이승만·박정희 정권에는 공(功)만큼이나 과(過)도 분명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재는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과 국가방위 업적에도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연임을 위해 무리한 3선 개헌을 시도했다"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반대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의 실정으로 정의는 실종됐다"고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근대적인 통치 스타일, 특히 말기에 이르러 밀어붙인 유신체제는 개인이 간직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다"며 "결국 저격당하는 불행한 사태로 생을 마감했고 18년에 걸친 장기집권도 끝나고 말았다"고 적었다.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goriou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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