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서 '5대 기조·4대 제안' 제시
"한반도 관련국 참여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해야"
정권 바뀌어도 남북합의 보장되도록 '평화의 제도화'
이산가족 상봉·스포츠 교류 등으로 돌파구 모색 의지
北도발 강한 어조로 규탄…'무모' '실망' '유감' '응징'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베를린 구상'의 목표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1953년 휴전 이후 64년간 계속된 정전협정 체제는 전쟁의 완전한 종결이 아닌 일시적 중단일 뿐이며,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또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나 금강산 관광 중지 사태에서 보듯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한 남북 간 경제협력은 언제든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전협정 체제를 종식하고, 한반도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핵문제와 평화체제를 포괄적으로 접근,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국내 조치로는 남북 합의의 법제화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추진한 햇볕정책이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계속되지 못한 데 대한 문 대통령의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독일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 과거 서독 정부의 동방정책이 20여년간 지속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빌리 브란트 총리가 첫걸음을 뗀 독일의 통일과정은 다른 정당의 헬무트 콜 총리에 이르러 완성됐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정당을 초월한 협력이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20념 넘게 동·서 교류를 지속한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교체되자 전 정권이 추진한 남북 간 교류·협력 사업은 거의 모두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보수정권 아래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이 사실상 사문화됐던 것처럼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전 정권에서 이룬 남북관계의 진전이 뒤집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남북합의를 준수하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항구적인 평화 체제의 토대 위에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누릴 방안으로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과 관련 남북철도 연결과 남·북·러시아 가스관 연결 등의 사업을 언급하면서 "남과 북이 10·4 정상선언을 함께 실천하기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10·4 정상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이용 ▲개성공업지구 건설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수송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다양한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포함돼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을 그려나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 북핵 문제의 진전임을 명확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에 앞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이틀 전 ICBM(대륙간탄도탄) 시험발사를 강행한 북한을 강한 어조로 규탄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선택은 '무모'하다고 비판했고,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또 우리 정부로서는 더 깊은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북한은 국제사회의 '응징'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며 "바로 지금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한다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하게 응징하되,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 정부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돕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이끌기 위한 우리 정부의 5대 정책 기조를 밝혔다.

이는 ▲한반도 평화 추구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비정치적 교류협력사업 추진 등이다.

또 '베를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비교적 정치적 부담이 작은 일부터 남북이 함께 추진해 나가자며 '4대 제안'을 제시했다.

우선, 민족 최대 명절이자 10·4 정상선언 10주년인 10월 4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할 것과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할 것을 공식 제안했다.

또 휴전협정 64주년이 되는 이달 27일을 기해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과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의 재개를 촉구했다.

이는 이산가족 상봉이나 스포츠 교류 등 비교적 부담이 적은 분야부터 남북이 손을 잡음으로써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베를린·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이상헌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