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장하는 한국당 의원들 > 정세균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퇴장하는 한국당 의원들 > 정세균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31일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이 총리를 지명한 지 21일 만이다. 김영삼 정부 초대 총리인 황인성 전 총리(3일) 이후 지명에서 인준까지 걸린 기간이 가장 짧았다. 총리 인준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하는 등 인준 과정이 순탄치 않아 문 대통령과 이 총리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출발하게 됐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천명한 ‘5대 비리 고위 공직 원천 배제’를 둘러싼 논란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5시30분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내각 후속 인사 등 속도 붙을 전망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출석 의원 188명 중 찬성 164명, 반대 20명, 기권 2명, 무효 2명으로 이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총리 임명동의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더불어민주당(120석)과 국민의당(40석) 정의당(6석)을 중심으로 찬성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인준 반대 당론을 정한 바른정당과 의원 자유투표를 하기로 한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21일 만에 45대 총리로 취임했다. 과거 정부에 비해 단기간에 초대 총리 인준 절차가 마무리됐다. 박근혜 정부는 지명 후 33일, 이명박 정부는 32일, 노무현 정부는 35일 만에 초대 총리를 임명했다. 김대중 정부에선 175일이 지나서야 초대 총리 인준안이 통과됐다.

◆한국당 “협치 어긋나” 반발

총리 인준을 매듭지으면서 문재인 정부는 내각 후속 인사와 국정과제 수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1야당인 한국당이 인준안 처리를 보이콧해 이 총리는 ‘반쪽 총리’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에서 ‘위장전입 이낙연, 문재인은 철회하라’,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 등을 적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국당은 이 총리 배우자의 그림 강매 의혹, 장남 증여세 탈루 의혹, 입법을 대가로 한 고액 후원금 수수 의혹 등에 대한 추가 해명을 요구했다.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임명동의안 상정 철회를 요구했지만 정 의장은 표결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개의가 1시간30분가량 지연됐다.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에 참석했다가 임명동의안이 상정되자 “첫인사를 이렇게 해도 되냐”고 외치는 등 강력하게 항의하며 일제히 퇴장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정권을 잡자마자 날치기하나. 너거들이 옛날에 하던 거 생각해 봐”라고 소리치자 민주당 의원들이 “고마해라”고 받아쳐 소란이 일었다.

◆장관 청문회 진통 예상

한국당이 총리 인준안 통과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야는 더욱 날카롭게 대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 권한대행은 임명동의안 처리 후 기자들과 만나 “향후 일어날 정국 경색을 비롯해 청문회를 어떻게 할지 등 숙제를 남겼다”며 “이런 현상이 벌어진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자진 사퇴와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 권한대행은 “청문회를 할지 안 할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며 청문회 보이콧까지 시사했다. 국민의당도 이 총리 인준엔 협조했지만 강 후보자 등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해선 ‘송곳 검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기준 확립도 과제로 남았다. 야당은 문 대통령이 병역 기피,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연루자는 고위 공직 임용에서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5년 7월 이전 투기 목적 위장전입과 2005년 7월 이후 모든 위장전입에 대해 고위 공직 배제 사유로 삼겠다는 청와대의 새로운 지침에 대해서도 문제가 된 후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자의적인 기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