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국고 지원·공무원 증원·최저임금 인상
조단위 사업 부처협의 없이 '과속'…뒤탈 우려도

정권 코드 맞춘 부처들 '조단위 예산' 요구…국정위는 '무사 통과'
공약 이행에 연 35조6000억원 필요 "현실 타당성 따져 과감히 수정해야"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걸어나오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걸어나오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각 부처가 조(兆) 단위 사업이나 논란 소지가 큰 사안을 단지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하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무리하게 제시됐을 가능성이 큰 공약은 부처 간 협의 등을 통해 현실 타당성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생략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 올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 추가 채용, 시간당 최저임금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해당 부처들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받자마자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묻지마 공약 이행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국고 지원은 박근혜 정부 4년간 매년 논란이 됐다. 시·도교육청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버텼고 교육부는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시·도교육청 소관”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 25일 “전액 국가가 부담하겠다”고 국정기획자문위에 보고했다.
공약 검증 생략…밀어붙이는 국정위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2조875억원이다. 이 중 8600억원만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1조2000억원가량은 시·도교육청이 부담하지만 내년부터는 전액 국가가 대겠다는 것이다. 당장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은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집 누리과정뿐 아니라 유치원 누리과정도 국고로 부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은 1조8534억원으로 현재는 전액 시·도교육청 부담이다.

예산당국은 “전혀 조율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이라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선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제시한 공약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게 인수위의 가장 큰 역할”이라며 “국정기획자문위는 공약의 현실성을 철저히 따져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 추가 충원과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인상도 따져볼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취지는 좋지만 실제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문제점이나 논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예산 확보 안 된 공무원 충원

공약 검증 생략…밀어붙이는 국정위

우선 공무원 추가 채용의 경우 현재로선 예산 확보 자체가 불투명하다. 정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올 6월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관련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자리 추경’에 반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인사혁신처, 행정자치부는 6월에 채용 공고를 내고 10월에 시험을 치를 예정이라고 국정기획위에 보고했지만 예산 확보가 안 되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각 부처에서 필요한 인력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 ‘톱다운’ 식으로 ‘올 하반기 1만2000명 추가 채용’ 목표를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정작 급한 부문은 놔두고 급하지 않은 부문의 인력부터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인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등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조 단위 재정사업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 이행에 필요하다고 밝힌 금액만 연간 35조6000억원, 5년간 총 178조원에 달한다. 실제 공약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들 수도 있다. 국정기획위가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재원 마련 계획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도 논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도 논란이 컸지만 국정기획위는 지난 25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직후 ‘2020년까지 인상’으로 시점을 못 박았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다. 이를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려면 3년간 연평균 15.7% 인상해야 한다. 최근 5년간(2013~2107년) 최저임금 인상률(연 6.1~8.1%)의 두 배 수준이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도 지난 9일 ‘일자리위원회 보고서’에서 “(2022년까지) 임기 중 실현으로 목표 수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또 공약집에 들어 있는 ‘일자리 대통령 100일 플랜 13대 과제’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목표를 ‘10% 이상’으로 제시했다.

국정기획위가 통상조직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한 토론회에서 “통상부문을 산업통상자원부에 떼놓은 것은 잘못됐다. 통상부문은 다시 외교부에 맡기는 게 맞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대선 공약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산당국 힘 빠질 듯

최근 업무보고 과정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부처는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다. 그동안 과도한 예산이란 이유로 반대한 사업들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잇따라 쏟아지고 있어서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국고 지원만 해도 기재부는 그동안 교육부와 함께 반대 입장이 확고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5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국정기획위에 보고했을 때도 기재부는 “협의된 바 없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8월 ‘2017년도 세제개편안’에서 금융위가 올린 ISA 세제 혜택 확대안을 제외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보고한 쌀생산조정제(벼 재배농가가 작물을 전환하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도 기재부는 과거 실패 사례를 이유로 반대해왔다. 하지만 국정기획위가 사회정책을 경제정책의 부수물로 보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향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기재부의 목소리가 예전만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주용석/임도원/김일규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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