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진 데에는 “우리도 정권 창출에 지분이 있다”는 정서가 깔려 있단 분석이 나온다. 상당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해 정권 창출에 기여한 만큼 새 정부에서도 ‘몫’을 챙기거나 정책 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일각에선 전·현직 시민단체 인사들이 문 대통령이 설치를 약속한 각종 위원회에 들어가 국정과제 설계에 직접 참여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정권 창출 지분' 주장하는 시민단체…문재인정부서 '입김' 세진다
◆‘파워그룹’ 된 시민단체 인맥

대선 기간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절반은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말이 나왔다. 시민단체 활동 경력이 있는 국회의원이 많은 더불어민주당의 특성상 이들이 캠프 주요 직책을 꿰차면서 과거 몸담았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대거 캠프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활동 경험이 있는 김용익 전 의원과 전순옥 전 의원은 캠프에서 각각 정책공동본부장과 소상공인진흥정책위원장을 맡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신인 홍종학 전 의원은 정책부본부장으로 문 대통령의 공약을 작성하는 데 깊숙이 개입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출신인 이미경 전 의원과 남인순 의원은 성평등본부에서 각각 본부장과 수석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시민단체 출신 캠프 인사들이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 속속 기용됐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된 김상조 후보자,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경력이 있는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경실련 출신인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캠프에 있진 않았지만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인사 개입 논란까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시민단체들은 연일 기자회견을 하거나 성명을 내고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18일 경제부처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특정 인사들의 실명을 내세워 내각 인선에서 배제하라는 요구까지 꺼냈다. 일각에선 정부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적 노조가 아니라는 고용노동부의 통보처분을 철회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공정위가 특혜를 준 의혹을 조사하라고도 했다. 대학 학자금을 무이자로 지원하고, 통신비를 대폭 인하하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문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 10일에는 시민단체 연합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재벌·언론·검찰개혁 등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5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중단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입안에 참여하나

시민단체가 정책 제안을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김상조 후보자는 “민주주의뿐 아니라 시장질서를 공정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것 역시 시민들의 참여로 진전돼야 한다. 재벌개혁, 경제개혁,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은 정부가 혼자 할 수 없다”며 시민단체 참여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성평등위원회,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가위기조사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설치해 국정과제를 힘있게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합의제 기구인 위원회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시민단체가 이들 위원회에 대거 합류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시민단체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국내 시민단체 상당수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정부 정책과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배가 산으로 갈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