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17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됐다. 김 후보자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17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됐다. 김 후보자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재벌 저격수’로 통한다. 2006년부터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에서 ‘재벌 개혁’ 운동을 이끌며 삼성 등 대기업의 아픈 곳을 콕콕 집어 왔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도 17일 인선을 발표하면서 김 후보자를 “재벌 개혁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김 후보자 역시 이날 내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주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재벌’을 상대로 경제력 집중 억제책을 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후보자는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 대상을 30대 기업의 자본 절반이 몰려 있는 4대 재벌로 좁혀도 무리가 없다”며 “현행법을 집행할 때 엄격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보다 공정위원장 인선을 먼저 발표한 것도 공정위에 힘을 실어줘 재벌 개혁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경제검찰' 수장 김상조 "4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하겠다"
◆20년간 재벌 개혁 운동

김 후보자는 외환위기 이후 소액주주 운동부터 시작해 20년간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전근대적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에 문제를 제기해 온 재벌 개혁 전문가다. 특히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승계 문제에 정통하다. 이날 회견에서도 재벌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재벌 개혁을 통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은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고까지 했다.

지난 3월에는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 합류해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제이(J)노믹스’(문 대통령의 경제철학)의 각종 재벌 개혁 관련 정책과 공약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업집단 규제에 주력

김 후보자는 ‘공정거래법’에도 정통해 현실 적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큰 틀에선 ‘기업집단(재벌)’ 규제에 집중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기업’만 상대한다”며 기업집단 규제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각 법에 흩어져 있는 기업집단 규제의 연결성과 통일성이 떨어져 규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 후보자의 소신이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캠프에서 같이 활동한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도 김 후보자에 대해 “재벌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선거 과정에서도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이나 기존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선 확고히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재벌 개혁의 목표와 수단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취해 왔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겸업 금지)는 중요한 원칙이지만 현행 규제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전속고발권 폐지할 듯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도 유연하다. 김 후보자는 이날 “넓은 범위가 대상이 되겠지만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감독에 초점을 둘 것”이라며 “재벌 개혁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은 획일적인 국제 기준을 적용해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오너의 사익편취 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게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다. 대기업 전담 조사 부서(조사국) 부활을 말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최소 지분율 상향 등 규제 강화도 예상된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전속고발권에 대해선 폐지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김 후보자는 다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공정거래법 체계를 보면 공정위가 고발권만 독점한 것은 아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공정위 직원들 평가는 ‘긍정적’이다. 공정위 한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 업무, 특히 대기업집단 정책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분”이라며 “정책 집행과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고위 관료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학자로 알고 있다”며 “현실적인 정책 집행을 평소 강조해 왔기 때문에 큰 변화보다 공정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상조 후보자 프로필

△1962년 경북 구미 출생 △대일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1994~현재)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재벌개혁감시단장(1999)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2001~2006) △경제개혁연대 소장(2006~현재)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