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렵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며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렵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며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25일 취임 첫날부터 당시 국회 의석 절반 가까이를 가진 거대 야당(당시 한나라당)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취임 당일 서명한 김종필(JP) 총리 임명동의안이 한나라당 의원 전원 불참으로 국회 상정도 되지 못한 것이다. 새 내각 명단은 발표조차 할 수 없었다. DJ는 결국 다음달 3일 JP 총리서리 체제를 출범시켰다. 17개 부처 조각은 퇴임을 하루 앞둔 고건 총리의 제청으로 겨우 마무리했다. 소수파 정권의 대통령으로서 험난한 5년을 암시하는 예고편이었다.

흔히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를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분석들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역대 대통령들은 뼈저리게 느꼈다. 야당을 설득해 국정 동반자로 끌어들이지 않고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일 거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여소야대로 출발한 DJ·노무현…야당 협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 마음대로? No

“만약 노동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고 금융개혁법안이 시일 내 통과만 됐더라도 우리 경제가 IMF로 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2001년 펴낸 회고록에서 재임 시절인 1997년 11월 외환 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동남아발(發) 금융 위기라는 대외 요인이 있었지만 내부 요인도 컸다는 것이다.

YS가 정리해고 도입 등을 위해 1996년 초부터 추진한 노동법 개정은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로 1년여를 난항하다 ‘2년간 시행 유예’ 조항을 달고서야 이뤄졌다. 한국은행에서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 등의 금융개혁법안은 1997년 7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야당의 외면으로 묻혀 있다 IMF 체제가 들어선 뒤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조직 개편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DJ는 집권 2년차인 1999년 3월,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통합해 기획예산부를 설치하고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를 합쳐 산업기술부로 통폐합하는 등 조직 개편을 추진했지만 야당은 물론 공동 정부의 한 축인 자유민주연합마저 반발해 백지화됐다. “여소야대 구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자서전에 남긴 DJ의 술회다.

“대통령이 입법의 달인 돼야”

야당 탓만 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통령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지 못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당 의원 공천권을 포기하고,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를 없앤 것은 대(對)국회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대표적 실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7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고, 2007년 1월엔 대통령 4년 연임제 등을 담은 개헌을 제안했지만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 한마디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는 회고록에서 “의도적으로 여의도 정치와는 되도록 멀리하려고 했다”고 적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총선을 위한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마저 악화됐다. MB의 ‘세종시 수정안’이 결국 국회에서 부결된 것도 절반의 책임은 MB에게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상황이 더 악화됐다. 야당이 소수당이라도 반대할 경우 법안 통과를 더 어렵게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곳곳에서 박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럴수록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설득하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국회를 비판하면서 여론몰이를 하다 결국 국정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행정의 달인에서 입법의 달인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장은 “대통령의 성공은 자신의 국정 목표를 얼마나 많이, 빠르게 입법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