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진보 후보 선택 처음 "보수 분열과 합리적 보수의 전략적 선택 결과"

전통적인 보수 텃밭으로 분류된 강원 표심이 19대 대선에서는 달라진 민심을 보였다.

강원 표심이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의 후보를 선택한 것은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처음이다.

이번 대선에서 도민은 진보 진영 문재인 후보를 34.16%의 득표율로 1위 자리에 앉혔다.

보수 진영의 홍준표 후보와 중도의 안철수 후보는 각각 29.97%와 21.75%로 2위와 3위에 그쳤다.

5년 전 제18대 대선에서 도민은 보수 진영의 박근혜 후보에게 61.97%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강원 득표율은 37.53%에 그쳤다.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중도가 혼재한 다자 구도로 치러진 탓에 문 후보의 강원 득표율은 18대 대선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전통적 보수 텃밭인 강원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30% 이상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한 것은 역대 대선에 비춰 이례적이다.

역대 대선에서 강원 표심의 보수 후보 짝사랑은 유난했다.

직선제 이후 7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강원 표심을 살펴보면 이 같은 흐름은 두드러진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후보들이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반면 진보 진영 후보는 강원에서만큼은 맥을 추지 못했다.

강원이 보수의 텃밭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기본 인식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았던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에서나, 2007년 17대 대선과 2012년 18대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탄생했을 때 강원 표심은 한결같이 보수 진영에는 압도적인 지지를, 진보 진영에는 초라한 성적표를 안겼다.

역대 대선과 다른 양상을 보인 강원 표심을 놓고 지역 정가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보수 지향에서 변화를 선택한 강원 표심은 접경지역에서 두드러졌다.

고성을 제외한 철원과 화천, 양구, 인제 등 접경지역조차 진보 진영의 문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접경지역에서 자유한국당 홍 후보와의 격차는 3% 포인트 안팎에 불과했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상임 공동선대위원장 심기준 국회의원은 "북풍을 이용한 안보 논리가 더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며 "무엇보다 이번 대선은 진영 논리보다는 촛불 민심에서 비롯된 정의와 불의의 대결 구도로 인식해 표심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미경 자유한국당 강원도당 사무처장은 "대통령 파면에서 비롯된 보수의 분열에 실망한 지지층을 재결집하는데 역부족이었다"며 "보수 지지층이 과거처럼 결집했더라면 다른 양상을 보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변화된 강원 표심이 보수적 성향이 옅어졌다기보다는 보수의 일시적 분열과 합리적 보수가 전략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대선 강원 표심을 보면 진보 진영에 속하는 민주당과 정의당은 40.72%, 보수 진영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36.83%, 중도를 표방한 국민의당은 21.75%의 득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결과는 진보의 약진과 보수의 부진, 합리적 보수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특히 합리적 보수층은 2010년 이후 선거에서 도지사는 진보 진영에,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보수 진영에 손을 들어주는 등 사안별로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표심을 행사했다.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김기석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강원지역 투표율을 보면 사전 투표가 높고 당일 투표가 낮았다"며 "이는 소극적이던 젊은 층이 적극 투표에 나섰고, 적극적이던 노인들이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투표 결과가 그대로 표심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최근 선거 결과의 추이를 보면 합리적 성향 표심의 전략적 투표가 보편화한 상황에서 강원도를 더는 보수 텃밭이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의 선거도 이번 대선과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대통령과 도지사의 당적이 엇갈렸던 강원도가 이번 대선으로 20년 만에 일치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등 진보 정권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의 최각규 전 지사와 한나라당 소속 김진선 전 지사 등 보수 성향의 도지사가 도정을 이끌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보수 정권에서는 민주당 소속 이광재 전 지사와 최문순 지사가 도백을 맡았다.

최문순 지사는 "강원 도정은 늘 여야가 엇갈렸으나 이번 대선 결과를 통해 당적이 일치됐다"며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금강산 관광 재개, 평화산업단지 조성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