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적절한 환경(right circumstances)이 된다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취임 이후 김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면,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정치적 인물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적절한 환경이 된다면 그를 만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적절한 환경’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즉각 중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미 대화에는) 많은 조건이 있다”며 “북한의 행동과 관련해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또 그들이 선의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대화와 협상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유일하고 정확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maniac)’ ‘나쁜 녀석(bad dude)’이라고 불렀다. 그와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달 25일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확정해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성명서에서 “우리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 공영 라디오 NPR과의 인터뷰를 통해 “의제가 옳다면 북한과의 직접 대화 문은 열려 있다”며 “북한은 핵무기 포기에 관해 얘기할 의향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깔린 멍석 위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무게를 실었다. 지난달 북한이 6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자 평가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집권 과정의 어려움을 인정하며 “그가 이성적인 인물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30일 CBS방송 인터뷰에서는 그를 “꽤 영리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언급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정은과의 만남이 어떻게 영광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여전히 국가원수(head of state)이기 때문”이라며 “여기엔 외교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은 대화의 조건에 쏠리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단순히 (핵 개발을)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멈췄다가 재개하는 것이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대화를 위한 조건이 ‘핵 동결’이나 ‘핵 개발 중단’이 아니라 ‘핵 포기’라는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런 미국의 태도와 조건 제시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화 기회를 북한이 걷어찬다면 미국은 군사적 대응 등 극단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