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조기 대통령선거 후 곧바로 출범하는 차기 정부는 ‘실세 차관’이 주도하는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기 선거 때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두도록 한 법안 처리가 무산돼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더라도 초대 내각 구성은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등을 고려할 때 최장 석 달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실세 차관들의 정부'
2일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유력 대선주자 캠프는 청문회가 필요 없는 차관부터 임명해 실권을 부여, 각 부처를 이끌도록 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다. 일부 캠프는 고위공무원단을 대상으로 차관 리스트까지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실세 차관들이 각 부처의 국정과제 선정 작업 등 정권 초기 핵심 업무를 주도하면서 ‘허수아비 장관’이 나오는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대두된다.

역대 정부에서는 대통령 취임 후 내각 구성까지 평균 한 달 정도 걸렸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 과정이 없는 만큼 내각 구성을 완료하는 데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달 30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가 차기 정부 출범 초기의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수위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합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 인사를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는 “인수위법 개정 무산으로 차기 대통령은 국무총리 후보자를 우선 지명해 국회 인준을 받고 그 총리가 국무위원을 추천해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며 “그러면 적어도 두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라도 하면 내각 구성 완료엔 석 달 혹은 그 이상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관가에서도 새 정부가 임기 시작과 동시에 인사청문회를 할 필요가 없는 차관을 전 부처에 걸쳐 곧바로 임명해 길게는 3개월 이상 업무를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권에 가장 힘이 실리는 출범 직후 100일간 이른바 ‘차관 정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차기 정부에서 처음 임명되는 차관들은 그 어느 정부의 차관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각 부처 차관은 이르면 5월10일 임명돼 그달 26일까지 내년도 예산요구서를 만들어 기획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수백, 수천가지 대통령 공약 사항 중에서 부처별 핵심 국정과제를 추려내야 하고 해당 실무를 주도할 국장급 이상 인사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마디로 차관들이 기존 정권의 인수위원회(국정 아젠다 설정 기능)와 초대 내각 장관(각 부처 인사)이 수행하던 역할을 동시에 떠맡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이주호 전 장관이나 박영준 전 차관이 정부 출범 후 약 1년 뒤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무총리실의 ‘실세 차관’으로 옮겨 조직 장악력을 높인 적은 있지만, 차관들이 모든 부처에서, 그것도 정권 출범 시점부터 국정을 주도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차기 정부에서 누가 차관으로 발탁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사회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장관에 준하는 중량급 인사들이 새 정부 차관으로 대거 기용되지 않겠느냐”며 “일부 핵심 부처에는 캠프 출신 정치인이나 교수가 차관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관가 일각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차관 정치’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공무원은 “상당수 부처의 장관은 얼굴마담으로 앉아 있고 실세 차관이 중요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면서 행정 혼란이나 왜곡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열/김주완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