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경 기조에 北 신형로켓엔진 시험 공개…향후 핵실험·ICBM으로 응수 가능성
불안정한 미중관계는 우려 요인…한국 대선 후 한미공조도 변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첫 외교 사령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7일 오후 한국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대북정책의 '폐기'를 확인하는 도장을 찍었다.

상대방의 변화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의 종결과 함께 틸러슨 장관은 이제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을 겨냥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도록 압박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같은 시점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그들(북한)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

중국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북한과 중국을 싸잡아 비판했다.

북한을 향해 새로운 차원의 제재·압박정책을 펼칠 것이며, 중국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짧은 문장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제재·압박 일변도보다는 6자회담으로 북한을 견인해야 한다며 미국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아시아에서의 미국 군사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힘겨루기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강력한 핵 개발 의지를 일관되게 유지해온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쉽게 몸을 낮출 가능성도 크지 않다.

오히려 미국의 강화된 압박 작용이 이전보다 큰 반작용을 불러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쪽을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주변 강대국들의 군비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북한 문제를 고리로 한 미중 두 나라의 힘겨루기가 더 거친 국면을 향할 경우 한반도의 안보는 안갯속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美 압박에 북·중 반발…북한 4월 핵실험ㆍICBM 중대변수
틸러슨 장관은 한국 방문에서 중국에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해 "한국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 조치는 부적절하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사드가 대북 방어용 무기이며, 오히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공을 펼쳤다.

틸러슨 장관이 서울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최근 보복조치를 겨냥해 사용한 표현들은 '불필요', '유감', '대국답지 못하다', '부적절', '자제' 등으로 거칠었다.

틸러슨은 자신의 발언을 외교적 수사로 모호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이에 CNBC 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매체들은 틸러슨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인 대북 제재에 중국을 동참시키려고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과 중국의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 차이는 틸러슨 장관의 중국 방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틸러슨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18일 열린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가 위험 수준이라는 점에는 공감했으나, 20년 노력에도 북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다는 미국 입장과 제재와 함께 대화도 병행해야 한다는 중국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렸다.

왕이 부장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미·북 3국 회담에 이어 6자 회담으로 가야 한다.

엄격한 제재를 가하면서도 응당 대화 노력도 해야 한다"면서 "진정한 담판의 진전을 이뤄야 하며 평화와 외교적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회담에서 양국 입장차가 있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중국은 틸러슨 장관이 한중일을 순방하는 가운데 이틀 연속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주변에 해경선을 보내 시위를 벌이는 등 미국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북한은 틸러슨의 중국 방문에 맞춰 신형 로켓 엔진 시험을 진행함으로써 한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19일 "김정은 동지께서 국방과학원에서 새로 개발한 우리식의 대출력 발동기(고출력 엔진) 지상분출시험을 보시였다"고 전했다
틸러슨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18일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실험을 통해 북한은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추가 도발로 응수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전후로 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또는 역대 최대규모의 핵실험 등으로 북한이 전략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이미 서울에서 대북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천명한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 대응할 것이 확실시되기에 한반도 정세는 심각한 긴장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4월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대북 지렛대를 활용,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 구도 속에서 중국이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대북 압박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결국 북한 문제에서 핵심은 미·중 관계인데 아직 상당히 불안정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어떤 정책을 펼칠지 여전히 불확실한데,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日극우화·군비경쟁·韓대선…한미일 공조, 불안요소 극복할까
북한의 도발에 맞서는 한미일 대북 공조체제는 여전히 강력한 틀을 갖추고 있지만, 불안정 요소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불안정 요소가 심화될수록 동북아 정세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극우·보수화로 치닫는 일본 아베 정권과 주변국의 계속되는 갈등이 불안정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이나 일본 각료들의 끝없는 독도 망언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한일관계는 북한의 위협 앞에서는 공조를 펼치다가도 역사 문제에서는 엇갈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한반도 주변국의 군비증강 추세도 역내 불안정 요소를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편성해 16일(현지시간) 공개한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재량지출 예산의 가장 큰 특징은 국방예산의 대폭 증가로 꼽힌다.

라이벌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였던 198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의 증액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설명이다.

국방예산 자동삭감 제도(시퀘스터)를 폐지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국방비 상한선보다 10% 늘어난 5천740억 달러로 편성했다.

유사시 임의로 쓸 수 있는 비상작전 예산 650억 달러를 합하면 전체 국방예산은 6천390억 달러로 늘어난다.

중국도 올해 국방예산 지출규모가 1조444억 위안(175조원)으로 작년 집행실적 대비 7% 증액 편성됐다.

이런 증가 규모는 작년 예산 9천544억 위안과 비교하면 9.4% 증액된 것이다.

이로써 중국 국방예산은 지난해 7.6%에 이어 2년째 한 자릿수로 증액 편성됐다.

일본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방위비 예산을 5년 연속 증가시켜 2017년도에 사상 최대인 5조1천251억 엔(약 51조4천580억원)으로 편성한 상태다.

미국, 중국, 일본이 경쟁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고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이 조기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든 상황도 눈여겨봐야 한다.

오는 5월 9일 이후 들어설 한국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 일본이 추구하는 대북정책 노선과 얼마나 조화를 이룰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차기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추구해온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는 기조를 채택할 경우 미국과 일본의 대북정책 기조와 갈등을 빚을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동북아시아 정세가 상당히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다"면서 "차기 정부는 국익, 유연성, 협력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분명한 원칙을 중심으로 외교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