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동구청에 조례 재검토 요구…"일본대사관 소녀상도 위치 부적절"

외교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지자체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해당 구청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외교부는 한발 더 나아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의 위치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는 이달 초 서기관 등 직원 2명을 동구청, 부산시, 부산시의회에 보내 소녀상 이전 관련 입장을 전하고 이에 관한 반응을 들었다.

이어 일주일 뒤 외교부는 "일본 공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위치가 국제 예양이나 관행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교훈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비공개 공문을 3개 기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공문에서 부산시의회가 추진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조례에 대해서도 취지 자체는 이견이 없으나 추진·심의 과정에서 일본 공관 앞 소녀상 설치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동구청 관계자는 23일 "구청장이 앞서 '임기 내에 소녀상 철거나 이전은 없다'고 말한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구청은 소녀상 이전·철거에 대해 권한이나 힘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청 공무원이 시민단체가 설치한 소녀상을 철거하고 농성자들을 끌어낸 뒤 국민적 비난을 받아 지금도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구청이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하는 것은 구청 공무원을 두 번 죽이는 일이며 지금은 상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외교부 공문을 받은 부산시 여성가족국의 한 관계자는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영사관 앞은 구청이 위탁 관리하는 시유지라서 부산시가 소녀상 이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은 이날 비판 성명을 내 "일본이 초·중학교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라는 학습지도 요령을 고시한 지난 14일에 우리 외교부는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지자체에 보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외교부의 소녀상 이전 입장 때문에 부산시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발의조차 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며 "민심은 외면한 채 일본의 입장만 대변하는 외교부는 '친일 외교부'"라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공문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자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지자체에 보낸 공문이 "수차례 표명해온 입장을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요하기보다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어 "서울 일본대사관 근처 소녀상도 국제 예양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건립하려고 하자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녀상 설치 후 한일 외교갈등으로 비화하자 외교부는 국제 예양 등을 이유로 사실상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며 기존 입장을 바꿨고 지자체를 직간접적으로 계속 압박하고 있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이런 외교부의 입장 변화에 지난달 10일 "외교부가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부산·서울연합뉴스) 김상현 김선호 이상현 기자 w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