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밥그릇싸움에 날새는 북한 인권 고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전한 북한의 인권 실상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한때 북한의 실세로 불리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집에서 잘못 말한 얘기가 도청에 걸려 총살됐을 정도다. 북한에서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형, 실종, 감금, 강간, 고문, 정치범 수용소 운영 등 인권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공화기로 총살하는 현장을 군중이 지켜보게 했다는 얘기는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유엔이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이 같은 인권유린을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막아보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도 11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공개활동에 나섰다. 1990년 독일 통일에 앞서 동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해온 서독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실제 통일 이후 비밀경찰 슈타지 등 옛 동독 관리들은 옛 서독의 감시활동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리의 북한인권법은 지난해 9월 시행 이후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통일부에 설치된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제 기능을 하고 있지만 북한인권재단은 출범은커녕 아직 구성도 못하고 있다. 정부·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싸움’을 벌이고 있어서다.

재단 이사진은 여당과 야당이 각각 5명, 통일부 장관이 2명을 추천해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상근직은 2명으로 차관급인 이사장은 이사진의 호선으로 선출되고, 사무총장은 이사장이 임명하게 돼 있다. 정부(2명)와 새누리당(5명), 국민의당(1명)은 이사진을 추천했지만 더불어민주당(4명)은 이사진 추천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이뤄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독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법안 제정 당시 상근 이사직 1명을 야당 몫으로 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정부·여당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사무총장을 야당에 양보하면 북한인권재단 운영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설립하기로 한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과 인도적 지원 관련 조사·연구, 정책 개발, 북한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NGO)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올해 예산 134억원 가운데 일부가 시민단체에 지원되다 보니 여야 모두 이권(利權)에 관심이 쏠렸다는 지적이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을 가장 위축시키는 게 인권 문제”라며 인권 감시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교민들은 런던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과 함께 활발한 대북 인권활동을 벌여온 것이 북한의 고위급 인사인 태 전 공사의 망명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통일을 앞당기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하기로 한 대북 인권감시 활동은 출발부터 엇박자를 내고 있다. 본질이 아닌 밥그릇 싸움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아예 국민들 관심에서조차 멀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정태웅 정치부 차장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