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공무원 "죄송하고 죽고 싶다"…"시키는 대로 다하나" 자성의 목소리도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28일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하려던 소녀상을 부산 동구청이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로 철거·압수한 뒤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철거에 동원됐던 한 공무원은 "죄송하다"는 심정을 토로했고,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을 일본의 앞잡이로 만들었다"며 누가 동원했는지 책임을 물었다.

동구청에는 소녀상 철거 이후인 28일 오후부터 29일까지 사실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비난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소녀상 철거를 주도한 안전도시과를 비롯해 동구청장 비서실 등에 매시간 수십 통의 시민 전화가 이어져 직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대부분 '소녀상 건립을 왜 허용하지 않느냐', '압수한 소녀상을 돌려줘라', '소녀상 철거를 주도한 공무원이 우리나라 공무원이 맞느냐'라는 등 동구청의 소녀상 철거 집행을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구청 측은 전했다.

구청의 한 공무원은 "전화가 많이 걸려와서 사실상 정상 업무를 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담당 부서 과장과 계장 등 책임자들은 출근하자마자 자리를 비우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녀상 건립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박삼석 동구청장은 이날 서울에서 열리는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하려고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박 구청장의 전화는 내내 꺼져 있었다.

부구청장 등 주요 간부도 현장을 살펴본다며 자리를 비웠고 전화 연락이 아예 닿지 않았다.

구청 홈페이지 '구청에 바란다' 게시판에는 28일부터 이틀간 구청의 소녀상 철거를 비판하는 80여 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구청 공무원노조 게시판에도 자괴감을 토로하는 직원 글이 이어졌다.

한 직원은 "아무리 상부의 지시라지만 시킨다고 다하면 공무원이 아니다. 너무 부끄럽다"고 글을 남겼다.

소녀상 철거에 동원됐다는 한 직원은 "어제 저도 현장에 있었다. 죄송하다. 죽고 싶다"고 댓글을 썼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부는 이날 오후 동구청을 항의 방문해 안전도시국장을 만난 뒤 "같은 공무원으로서 동구청의 소녀상 철거가 정말 부끄럽고 우리나라 공무원을 일본의 앞잡이로 만들었다"며 "누가 공무원을 동원했는지 밝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전도시국장은 "담당 부서 등 140명의 공무원을 동원된 것은 맞지만, 전결 등의 지시 없이 공무원 스스로 참여했다"며 "31일 소녀상 제막식을 앞두고 전 직원 비상근무가 내려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소녀상 철거를 규탄하는 각계 단체의 성명도 이어졌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부는 "박삼석 동구청장은 소녀상 철거에 공무원을 동원하지 말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맞서 소녀상 건립을 즉각 허가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과 부산 녹색당도 각각 동구청장 규탄 성명을 냈다.
부산 소녀상 철거 후폭풍…구청에 비난전화 폭주 '마비'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은 매일 일본영사관 후문 인도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인근 정발장군 동상에서 야간 촛불집회와 24시간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구성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지난 1년간 부산시민 8천180명의 서명을 받고 8천500만 원의 성금을 모아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운동을 해왔다.

외교부는 앞서 27일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에 대해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w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