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영국서 망명…'금수저' 출신 베테랑 외교관
"통일 앞당기는 일에 일생 바칠 것"…통일 일꾼 자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다 지난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55)는 유럽에서 북한 체제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던 베테랑 외교관이었다.

태 전 공사는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앞둔 지난 19일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민족의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을 바칠 것"이라며 통일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좋았던 태 전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당시 그와 학업에 함께한 이들이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과 허담(1991년 5월 사망) 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등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이었다.

태 전 공사는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고,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태 공사는 곧 귀국해 유럽연합(EU) 담당 과장을 거친 뒤 10년 정도 전에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됐다.

북한 외무성의 EU 담당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로 근무하던 태 전 공사는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EU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한 그의 입지는 2015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이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동행한 장면을 통해 단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태 전 공사는 영국에서 북한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방에 홍보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가 외부에서 오해를 받고 선정성을 추구하는 언론들에 의해 잘못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체제 선전 일꾼이었던 태 전 공사는 귀국을 앞둔 지난 7월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과 함께 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태 전 공사는 "북한 김정은의 폭압적인 공포통치 아래 노예 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지난 19일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밝혔다.

또 "북한에서는 직위가 올라갈수록 감시가 심해져서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면서 "김정은이 어리기 때문에 통치가 수십 년 지속할 경우 자식, 손자 대까지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간부들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태 전 공사는 한국행을 선택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으로, 입국 이후 국가정보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탈북 경위 등에 대한 유관기관 합동조사를 받았다.

그의 가족들은 일반 탈북민과 달리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거치지 않고 남한 사회에 정착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23일 국회 정보위에서 망명 경위와 김정은 통치 체제에서의 북한 주민 실상 등을 설명하며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27일에는 정부서울청사 3층 브리핑실에서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하며 첫 언론 접촉도 했다.

태 전 공사는 내년부터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구원 소속으로 대중 강연, 탈북자 관련 단체와의 만남 등 공개활동을 하면서 북한 체제의 현실을 알리고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