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대에서 열린 '탄핵심판의 헌법적 쟁점'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맨오른쪽부터) 전종익·송기춘 교수.
23일 서울대에서 열린 '탄핵심판의 헌법적 쟁점'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맨오른쪽부터) 전종익·송기춘 교수.
[ 김봉구 기자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기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학계 주장이 제기됐다.

헌법학자들은 탄핵심판 인용에 대한 명시적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 이뤄진다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헌재가 법리에 따라 심리하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과 국회 의결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헌법학회와 서울대 법학연구소가 23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탄핵심판의 헌법적 쟁점’ 공동학술대회에 발표자로 나선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시기가 문제될 뿐, 대통령 탄핵 결정을 하게 될 사안이라는 점에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탄핵소추 요건을 규정한 헌법 제65조 1항의 해석과 관련해 “탄핵소추는 중대한 위반에 한정돼야 한다. 다만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는 중대성의 요건을 이미 위헌 판단에서 고려했기 때문에 굳이 ‘중대한 헌법 위반’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경우 원론적으로 ‘중대한 위반’ 여부를 엄밀하게 판단해야 하나 앞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상당수 헌법 위반 혐의들을 감안하면 중대성이 이미 입증됐다는 견해다. 탄핵심판 인용을 ‘기정사실화’하는 해석으로 보인다.

헌재의 탄핵심판 청구에 대한 인용 여부를 직접 묻는 것이 아닌, 헌법학자들이 학술적 견해를 표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수위 높은 발언이다. 때문에 사회를 맡은 김주영 명지대 법대 교수(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는 “학회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송 교수는 신속한 재판 요구와 함께 헌재가 탄핵심판의 신속성을 강조한 것에 비춰 박한철 소장의 임기만료 전인 내년 1월 안에 결론의 윤곽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헌재가 탄핵심판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란 견해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가능한 충실하게 심리해 결정하는 게 기본”이라며 “심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충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에 대해서도 탄핵의 정치적 정당성과는 별개로 “조사와 소명 절차 없이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현재 방식은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탄핵안이 발의되면 본회의 보고 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사하게끔 해야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발표한 전종익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 여부와 관련해선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현행 대통령 탄핵제도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의미’를 갖는 재판이며 ‘정치적 사법기관’인 헌재의 권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탄핵심판은 단순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심판을 넘어서는 정치적·징계적 성격을 갖는 재판이란 것. 또한 탄핵의 불이익은 대통령직 파면이며 헌법 보호 필요성, 장래 구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형사재판보다는 낮은 수준의 증명으로도 충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토론자로 참석한 헌법학자들의 견해는 다소 엇갈렸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송기춘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탄핵심판 절차는 정치재판이나 여론재판이 아니다. 지금처럼 정치권이나 언론이 정치적 압력이나 여론몰이를 통해 헌재의 객관적·독립적 심판 기능을 훼손하려고 시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탄핵심판은 유·무죄를 가리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을 계속 맡기는 것에 관한 판단이 본질”이라고 전제한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 기소 사실이나 국정조사, 언론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탄핵심판 인용 결정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면서 탄핵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김하열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비교해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 성격과 법 위반 정도가 ‘구체적’이란 점, 탄핵 배경이 ‘민의(民意)’에 의한 추동이란 점을 짚었다.

박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헌재 결정과 법원의 형사재판 판결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노희범 변호사(법무법인 우면)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모순은 아니다. 독립된 헌법상 절차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용훈 상명대 공공인재학과 교수도 “헌법재판과 형사소송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나 본질적 차이를 간파한다면 용인할 수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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