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책상에서 문까지 15m…장관 뒷걸음질하다 넘어지기도
MB 취임 초 "집무실 너무 넓다"

역대 정부, 공간 재배치 시도…국회서 예산 문제로 흐지부지
문재인, 지난 대선 청와대 이전 공약

"고립된 구조 '문고리 실세' 불러"…"소통은 결국 사람 문제" 지적도
청와대 본관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부속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외빈 접대를 위한 백악실과 집현실 등이 있다. 부속실엔 부속비서관을 포함해 10여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본관에서 약 200m 떨어진 관저에는 대통령 숙소와 간이 집무실, 주방 등이 있다. 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위민관)은 세 개 건물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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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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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참모들의 격리로 인한 문제점은 역대 정부마다 지적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 집무 방식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세월호 사건 때 행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관이 아니라 관저에 머물면서 참모들과 수습책을 논의하지 않았으며, 서면 보고만 받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각과의 소통을 위해 장관 대면보고를 늘릴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화도 있고, 이메일도 있어 대면보고보다는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해야 할 때가 있다”며 “대면보고가 중요하다면 더 늘려가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 초반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16일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수석실별로 필요한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저녁과 새벽에 수시로 전화를 하곤 했다”며 “휴식만 취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아무래도 비서동에서 본관까지 멀다 보니 대면해서 보고할 기회가 적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상당수 대통령이 관저에서 업무를 보곤 했다. 한 야권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식 일정이 없으면 관저에서 일을 보기도 했다”며 “다만 수시로 참모들을 관저로 불러 맞담배를 피우며 현안을 논의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휴일을 제외하고 본관으로 꼬박꼬박 출근했다. 비서동이나 연풍문(청와대 직원이 외부 방문객과 만나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지은 건물)으로 자주 내려와 비서관, 행정관 등을 불러 토론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참모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 구조를 바꾸는 것을 추진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수포로 돌아갔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13년 1월 대통령 집무실을 본관에서 참모들이 있는 비서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정부 출범 뒤 유야무야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본관과 비서동 거리를 더 가깝게 배치해 ‘불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당시 총무비서관은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뿐 아니라 위민관에도 있다.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비서동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너무 좁아 상시로 이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2012년 대선 공약으로 청와대 이전을 내놨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정부서울청사로의 이전을 약속했다. 그는 “청와대는 구중궁궐과 같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려 해도 면담 일정을 신청하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권위적인 곳”이라며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부터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품어왔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 비서동을 확충하는 등 청와대 공간 재배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여야 의원들은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며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 청와대 이전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연면적 8476㎡인 본관 구조를 바꿔 참모들이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됐다. 1991년 본관 완공 당시 임재길 총무수석은 “천년을 두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라고 했지만 웅장한 한옥 형식으로 ‘임금님의 거처’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은 출입문에서 대통령 책상까지 거리가 약 15m에 달해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쳐 나오다 다리가 꼬여 넘어진 일화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본관 대통령 집무실을 줄여 참모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옥식으로 돼 있는 본관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포기했다. 이 전 대통령도 취임 초 본관 집무실을 둘러보면서 “너무 넓어 운동해도 좋겠다”고 한 뒤 리노베이션을 지시했으나 시행되지는 않았다.

권력의 크기는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와 반비례한다는 게 통설이다. 이런 청와대 구조가 ‘문고리 3인방’의 힘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이전은 오래 걸리고 예산도 많이 드는 만큼 비서동을 확충해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본관은 정상회담장과 기념관 등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현 정부 인수위 특강 때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이 따로 있으면 대통령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생겨 소통이 안 된다”며 “비서동을 개조해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일본 정치학계 원로인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건축이 정치를 결정하고 정치가 건축을 결정한다”며 “국가 수장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면 결국 그 자신이 고립된다”고 말했다.

공간 배치가 중요하지만 소통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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