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에 영향' 미사용량 임의 소진·폐기…"사고 우려에 세금 낭비"
군 당국의 허술한 관리로 습득한 수류탄으로 주민 위협하기도


울산 예비군부대 훈련용 폭음통 폭발 사고로 군부대의 허술한 탄약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울산시 북구 신현동 53사단 예하 예비군 훈련부대에서 난 폭발 사고는 제때 소진하지 않은 폭음통을 한꺼번에 폐기하려고 모아뒀다가 사고로 이어졌다.

허술한 군 당국의 탄약·화약 관리가 아찔한 인명 사고로 이어진 셈이다.

심지어 남아도는 포탄을 땅에 묻어 은폐하거나 기관총 실탄 수천 발을 마구 쏴 소모했다는 제대 군인들의 증언이 잇따라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잉여 탄이 생기면 상부의 지적과 질책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 인사 평가 불이익받을까 봐 미사용량 임의 소진·폐기…"사고 우려 세금낭비"

울산 예비군 훈련부대에서 사고가 난 훈련용 폭음탄도 올여름에 소진했어야 했다.

이 부대가 올해 수령한 폭음통은 총 1천842발로 이 중 242개만 사용하고 86.7%인 1천600개나 남았다.

이처럼 미처 소진하지 않아 남은 폭음통 1천600개를 화약을 개당 3g씩 분리해 예비군 훈련장에 버렸다.

결국, 따로 모아 버려진 폭음통이 폭발하면서 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현역 병사 2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중 1명은 발가락 3개가 절단되는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선 부대에서는 탄약이나 폭발물 등을 제때 사용하지 않고 모았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사례가 적잖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중 계획에 따라 분기 또는 3개월 단위로 탄약이나 교보재 등을 보급받아 탄약고에 보관하고 훈련이 있을 때마다 꺼내 사용한다.

예비군부대의 경우 예비군들이 예상했던 인원만큼 모이지 않거나 계획대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많이 남게 된다.

일선 부대는 계획에 따라 사격 훈련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말마다 탄약이 남는 경우가 많다.

남은 탄약이나 폭음탄 등을 이듬해로 이월해야 세금 낭비가 없는데 자주 이월하면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탄약고 담당자나 상급자가 진급 등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연말이면 남은 탄약이나 폭음탄 등을 한꺼번에 사용하거나 폐기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상급부대에서 떨어져 있는 독립 부대나 규모가 작은 부대일수록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잦았으나 최근에는 보급량의 10% 정도가 남으면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이월하고 있다고 군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보급량의 10%보다 더 남게 되면 상부의 지적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아예 보고하지 않고 한꺼번에 자체 처리하거나 폐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남으면 문제" 포탄 땅에 묻고 버리고…탄약은 마구 갈겨 소비

잉여 탄이 생기면 상급부대의 질책이 우려되기 때문에 탄약의 은폐·은닉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박모(35) 씨는 과거 강원도에서 포병으로 군 복무 할 당시 부대 밖 인근 야산에서 작업하다 55㎜ 포탄 여러 발을 땅속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조사결과 해당 포탄은 비교적 최근에 땅에 묻힌 것으로 부대 측이 실제 포탄 보유량을 검열받는 과정에서 장부와 달리 남아돌자 잉여 포탄을 땅속에 묻어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미 시일이 오래 지나 군수장교와 담당자가 전출 가거나 제대해 누가 포탄을 은폐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포탄이 발견된 곳은 평소 약초를 캐는 이들이나 등산객이 자주 오가는 야산이었다.

경기도의 예비군 훈련부대에서 군 복무한 대학생 이모(24) 씨는 예비군 훈련부대의 '연습용 수류탄' 관리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예비군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연습용 수류탄 투척 훈련을 기피하면서 예비군 훈련생 1명당 1개씩 제공된 연습용 폭음탄이 남아돌아 현역 사병이 한꺼번에 수십 개씩 투척해 억지로 소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전했다.

강원 양구에서 K3 기관총 사수로 군 복무하다 올해 2월에 전역한 A(23) 씨는 부대 내 실탄 낭비 사례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A 씨는 "분기마다 하루 날을 잡아 부대 내 소규모 사격장에서 표적도 없이 한 번에 몇백 발 단위로 수천 발 이상의 실탄을 소비했다"며 "당시 간부는 '실탄을 소비하는 거니까 아무런 부담 없이 막 갈기면 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식의 실탄 소비에는 사수, 부사수, 간부 등 20여 명이 동참했다.

이렇게 반나절 동안 사격을 하고 나면 얼굴, 팔, 목, 허리 등에 상당한 통증이 생길 정도였다.

A 씨는 당시 "실탄 한 발 가격이 몇백 원은 할 텐데, 차라리 이 돈으로 쥐꼬리만 한 병사들 월급이나 좀 올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의 허술한 탄약 관리는 주민 안전까지 위협한다.

지난해 9월 철원에서는 퇴역 군인이 인명 살상용 수류탄으로 전처를 협박하다가 대치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에 검거된 이모(50) 씨는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들고서 경찰과 20여 분간 대치했다.

철원지역 군부대에서 육군 상사로 근무하다 2009년 전역한 이 씨의 집에서 발견된 수류탄은 모두 9발이었다.

당시 이 씨는 보관 중인 수류탄 9발 중 1발을 꺼내 남자 문제로 다투던 전 처를 위협한 뒤 18시간가량 종적을 감췄다.

이 때문에 철원지역 주민들은 이씨가 검거되기까지 언제 터질지 모를 수류탄 소동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최해민·박철홍·김재홍·이덕기·이상현·이재현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