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춘 행보' 선택했던 고건 전 총리 "권한대행 기준은 상식과 원칙"
고건 전 국무총리(사진)는 2004년 국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 때까지 6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맞아 ‘권한대행은 고난대행’이라며 엄청난 심적인 부담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탄핵에 대비한 국정 위기 관리 매뉴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는 “직감으로 움직였다”며 국방부에 전화해 지휘경계령 발동부터 지시했다.

고 전 총리는 “‘상식과 원칙’ 두 가지를 권한대행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몸을 낮춘 행보를 선택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됐다고 하지만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며 “총리 역할도 하고, 대통령 권한대행도 하고, 나만 1인2역을 하면 됐다. 그(총리-권한대행) 구분은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고 전 총리는 김우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 1회 청와대에 와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중에 “회의 결과만 보고하면 된다고 청와대에 전하라”고 지시했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 직무정지 63일 동안 외국대사 신임장 제정을 위해 단 한 차례만 청와대를 방문했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4월22일 발생한 북한 용천역 폭발 대책회의에서 “‘김정일이 죽었다면 생각해 둔 대책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회의장엔 침묵만 흘렀다”며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수장들이 입을 다물고 아래만 쳐다보는 풍경,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썼다. 용천역 폭발 사고 후 대북 지원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노 전 대통령에게 알려줬다고 소개했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대통령 탄핵으로 결정나면 권한대행을 하는 현직 총리가 (대선에) 나올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고 전 총리는 “절대 안 될 일”이라며 “내가 권한대행으로 국가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는데 누구한테 맡기고 입후보하나”라고 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