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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인사파동·세월호·메르스·최순실…바람 잘 날 없던 3년10개월
박근혜 정부 3년10개월은 한마디로 ‘국정기조 난맥’으로 요약된다. 경제 정책을 비롯해 외교·대북(對北) 등 핵심 정책 기조에 일관성이 없었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논란과 갈등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스타일’이 국정 운영 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든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오락가락 국정기조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집권 4개월 만인 2013년 6월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 및 입법이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왜곡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었음을 뒤늦게 자인한 것이다.

핵심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취임 첫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꿨다. 세율은 손을 안 댔지만 사실상 부자 증세였다.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은 ‘거위 깃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담뱃값 인상은 ‘우회 증세’였다. 지난 3일 국회는 소득세 과세표준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현행 38%에서 40%로 인상했다.

대북 정책은 강경 일변도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1주년 신년 담화에서 ‘통일 대박론’을 설파하고, 그해 3월 ‘드레스덴 3대 대북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정권의 잇단 도발을 계기로 대북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남북 관계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으로 절정에 치달은 ‘친중(親中) 외교 노선’은 대내외 비판에 직면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과의 갈등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집권 중반부터 최대 국정과제로 밀어붙인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개혁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공무원 연금개혁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다.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법 기간제법 등 노동개혁 5개 법안은 정치권 논의를 거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당초 취지에서 크게 퇴색됐다. 정부가 기간제법을 포기했지만 4개 법안도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불통이 낳은 취약한 국정 운영 시스템

임기 첫해부터 국무총리·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잇따라 낙마하며 ‘수첩 인사’ 비판을 초래했다. 인사 난맥상은 2년차에도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홍원 전 총리 후임에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잇따라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통 인사’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해 말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졌다.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 씨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등과 국정에 개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국정 동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지면서 국정 운영 신뢰도에 다시 흠집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취약한 위기대응 시스템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불통’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추궁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관저 내 대통령의 사사로운 생활은 모른다”고 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청와대에 계셨던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박 대통령 말씀에 토를 달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박 대통령이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국회 심판론’을 제기했다. 각종 개혁입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을 겨냥한 총선 심판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공천 내분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결국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16년 만에 국회는 여소야대 국면으로 전환됐고 박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정권 말 권력 누수현상)’에 빠졌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