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 발표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전광판 뒤쪽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 사진=한경 DB
지난달 2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 발표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전광판 뒤쪽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 사진=한경 DB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 될 위기에 처했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탄핵 시계는 더욱 빨라졌다. 이제 박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달려있다.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국군통수권을 포함한 대통령 권한은 청와대가 국회의 탄핵의결서를 받는 즉시 정지된다. 헌재가 '탄핵 기각'을 결정하면 본회의 의결로 박 대통령의 권한은 회복된다.

반대로 탄핵 결정을 내리면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은2018년 2월25일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된다. 2013년 2월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33년 만에 청와대에 재입성한 후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셈이다.

◆51.6% 당선에서 탄핵까지

박 대통령은 1963년 10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서 청와대에 처음 발을 들였다. 1974년 8월15일 프랑스 유학 중이던 당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하면서 22세에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1979년 10월26일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청와대를 나왔다.

1998년 대구 달성 재·보궐 선거에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한나리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돼 위기의 당을 구해내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다시 당이 존폐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박 대통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쇄신 작업에 나섰다. 2012년 8월 84%의 득표율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2월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박 대통령의 득표율은 51.6%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차이는 3.6% 포인트였다.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문 후보에게 승리를 거뒀었다.

박 대통령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직선제가 재도입된 이후 처음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71년 7대 대선 이후 41년 만에 과반 지지율을 획득했다. 1964년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부녀(父女) 대통령의 기록도 세웠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유세를 펼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사진=한경 DB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유세를 펼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사진=한경 DB
◆3번의 대국민 담화…"탄핵안 가결시 결과 수용"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의 연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9월20일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실제 임명한 사람이 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라고 보도하면서다.

10월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 해당 사건이 배정됐고, 같은달 24일 JTBC가 최씨 사무실에 있던 태블릿PC에 대통령 연설문이나 공식 발언 등 청와대 관련 문건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를 두고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정농단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됐다.

다음날인 25일 박 대통령은 1차 대국민 담화를 열고 일부 연설물 작성에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며 사과했다. 사실상 최씨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것이다.

분노한 국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모이자 박 대통령은 11월4일 또 다시 대국민 담화를 열었다. 2차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와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발언이 유행어가 됐고 각종 패러디가 쏟아졌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정부 최저치인 5%까지 떨어졌다. 2차 담화 일주일 뒤 주말 촛불집회엔 100만명이 참여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인원이었다.

20일 검찰은 최씨와 안종범·정호성을 일괄 구속기소했고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29일까지 검찰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지만 박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촛불 민심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며 주최 측 추산 150만명이 집회에 몰려들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긴다"며 퇴진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지난 3일 야 3당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6일 박 대통령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와 청와대에서 만나 "탄핵안이 가결되면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