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민변 등, 분석결과 발표…"'헌정유린·사찰주범' 김기춘 구속해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법조계와 종교계, 민간인에 대한 사찰과 개입을 시사하는 부분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전 수석이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기록한 비망록을 분석, 발표하며 이처럼 주장했다.

이들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 내용을 열거하며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이틀 전인 12월17일자에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 중(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이라고 적혀 있는 메모가 발견됐기때문이다.

실제로 헌재는 메모에 있는 대로 12월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렸다.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은 헌재가 정당해산 심판의 결과를 발표하기 전 청와대와 사전 협의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11월25일자에는 김 전 비서실장의 발언임을 알 수 있는 장(長)이라는 표시와 함께 '헌재 재판-여론전, 활동방향정립(시민사회 활용)'이라고, 26일에는 '헌법학자 칼럼 기고 유도-법무부와 협력'이라고 김 전 수석은 적었다.

민변 변호사들의 이력과 성향을 조사하도록 하고,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의 통합을 종용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장 선거에도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8월8일에 '민변 활동 변호사/정부 관련사건 수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5개월여 뒤인 이듬해인 1월 검찰이 과거사 사건 수임제한을 위반한 변호사를 수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어 변호사들은 같은 해 7월 기소됐다.

9월25일에는 '보수법률가단체 현황-민변, 통일 모색토록'이라고 적혀 있는데, 2년 뒤 실제로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들의 통합이 있었다고도 지적됐다.

10월11일에는 '대한변협회장 선거-건전인사 선출, 단일화, 애국단체의 관여 요구됨'이라는 메모가 김 전 실장의 발언으로 적혀 있다.

법원에 대해서도 9월4일자 메모에 '법원 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이라고 적혀 있다.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은 "청와대가 당직 판사의 명단과 성향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조치로 법원에 대한 부당 개입"임을 주장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등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 글이 게시된 것에 대해 독립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치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특히 당시 명예훼손 게시물에 대한 차단 조치는 피해자 본인의 신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2015년 1월6일 김 전 실장이 '규제 가능성을 검토-제도화'라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됐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실제로 이후 방통심의위는 명예훼손 게시물을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도록 통신심의규정을 개정했다"며 "방통심의위가 청와대 의중에 따라 검열하는 청부심의기관으로 전락했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특히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횡행하는 소문에 대해서는 청와대 차원에서 사이버수사팀을 꾸려 수사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엿보였고,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이석우 당시 카카오 대표에 대해 '대응'이라고 적힌 메모도 있었다고 이들은 밝혔다.

종교계와 관련해서는 '신부-뒷조사/ 경찰, 국정원 Team(팀) 구성 → 6급 국장급'이라는 8월7일자 메모가 발견됐다.

장 활동가는 "청와대가 천주교 신부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청와대가 '뒷조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충격적인 일로 스스로 위법적 사찰임을 인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북' 논란을 빚은 신은미·황선씨의 토크콘서트가 조계사에서 개최된 것과 관련해서는 '개입조사 후 조치(자승)'이라는 메모가 발견돼 불교계를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염수정 추기경이 세월호와 관련해 '누군가 그 아픔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발언한 데 대해 김 전 실장이 '같은 자세를 타 종교지도자도 취하도록 노력'이라고 지시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그 밖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거나 미국의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인 '미시USA'에 대한 사찰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 전 수석은 '대통령의 7시간' 관련 칼럼을 쓴 산케이 신문사와 관련해서는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List 만들어'라고 적어 외신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성래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청와대 수석을 모아놓고 지시한 사람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인데도 그는 국회 국정조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김기춘을 포함해 민주공화국을 훼손한 일당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