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공비리 조사특위', 2016년 '최순실 국조특위'
'재단 모금' 논란 판박이…이번에는 '살아있는 권력' 정조준

국회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6일 개최하는 1차 청문회는 '재벌 청문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최태원 SK·구본무 LG·신동빈 롯데·김승연 한화·조양호 한진·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재계를 주름잡는 재벌 총수들이 일제히 청문회 증인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28년 전인 1988년 '일해(日海) 청문회'를 고스란히 재연해놓은 듯하다.

당시 청문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가족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모금한 것의 강제성과 대가성이 쟁점이었다.

국회는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 1988년 말 청문회장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류찬우 전 풍산금속 회장, 장치혁 전 고려합섬 회장,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이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 등 재벌 총수들을 불러세웠다.

사실상 정부가 주도한 재단에 대기업들이 수십억∼수백억원의 돈을 냈다는 점은 박 대통령의 비호 아래 최순실 씨가 세운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돈을 낸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판박이다.

당시 일해재단 모금은 '5공 실세'였던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현재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이 깊이 개입했으며, 이번 역시 박 대통령의 측근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금의 '고리' 역할을 한 것도 되풀이됐다.

일해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눈길을 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아웅산 유족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23억원을 걷을 때는 부담 없이 모금했고, 1백억원의 기금을 마련한 2차 모금 때도 재단 설립의 취지에 찬동, 적극 협조했지만 기금 목표가 2백억 이상으로 증액될 때는 내는 게 편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냈다"고 말했다.

일해 청문회와 차이점을 꼽자면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에 따른 민주화 이후 전 전 대통령이 물러난 시점에 열린 반면, 이번에는 '촛불 시위'가 진행 중인 가운데 박 대통령의 재임 중에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외에도 회사 합병, 면세점 선정, 사면 청탁 등 '정경 유착의 공범'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박 대통령을 상대로 추진되는 국회의 탄핵소추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988년 청문회를 앞두고 "내가 입을 열면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