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무는 '국방'…첫 회의는 '경제·외교·안보 관계장관회의'
고 건 저서 '국정은 소통이더라'를 통해서 본 권한대행 63일
숨가쁜 탄핵안 의결 당일…총리 입장발표에 이어 국무회의 개최
"직무 정지에도 대통령은 靑관저에…긴장관계 만들 필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탄핵안 가결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국무총리의 직무 범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행 법령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과거 정부의 전례를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고건 전 총리는 '국정은 소통이더라'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업무를 기술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첫 번째 임무는 '軍 경계태세' 확립 = 고건 전 총리는 2004년 3월 12일 오전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될 조짐을 보이자 가장 먼저 '국방'을 챙겼다.

고 전 총리는 탄핵안이 의결되기 전 유보선 당시 국방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군 지휘경계령'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고 전 총리는 이어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상근무 태세를 갖춰달라"고 지시했다.

국방 다음은 외교였다.

고 전 총리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개국을 포함해 한국 주재 각국 대사 등에게 "외교·안보·경제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는 내용을 알리도록 지시했다.

다음은 치안이었다.

고 전 총리는 허성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국 경찰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를 하달했다.

◇숨 가쁘게 돌아간 탄핵안 당일…첫 일정은 경제·외교·안보 장관 회의 = 고 전 총리는 오전 11시 57분 탄핵안이 의결된 이후 약 1시간 반 뒤인 오후 1시 30분 첫 일정으로 '경제·외교·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다.

다만 탄핵안 의결에 앞서 미리 각종 조치를 취해놓은 탓에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다.

고 전 총리는 이어 오후 2시에 총리 입장을 발표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

국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3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한·미 동맹 ▲남북 관계의 평화적 발전 ▲6자 회담의 성공적 추진 등 10가지 최우선 국정 현안 10가지를 논의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

청와대로 올라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나는 절차도 빼놓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탄핵안 의결 다음 날인 2004년 3월 13일 오전 9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에 따른 국정의 관리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비상한 각오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주재한 첫 번째 공식회의였다.

고 전 총리는 13일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톰 리지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만났다.

대통령을 대신한 첫 번째 외빈 접견이었다.

◇철저하게 낮은 자세…'로키 또 로키' = 고 전 총리는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고 전 총리는 탄핵안 의결 바로 다음 날인 13일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저만 1인 2역을 할 뿐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전과 같이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을 보좌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일은 청와대 비서실의 보좌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는 참석하지 않고 결과 보고만 받겠다고 밝혔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몸 낮춘 행보를 선택했다.

직무가 정지됐다 해도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다"며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군사관학교 임관식을 앞두고 총리실 연설 담당 보좌관이 대통령 비서실에서 가져온 연설문을 고 전 총리의 화법에 맞게 수정했는데 고 전 총리가 원본을 가져오라고 한 뒤 거의 그대로 읽었다는 내용은 '로키 행보'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63일 동안 청와대 출입은 단 한 번 = 고 전 총리는 63일 동안 권한대행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며 청와대를 출입한 것은 그리스·아프가니스탄·쿠웨이트·태국 등 신임 주한 대사들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을 때 단 한 차례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외교부에서 행사를 하려고 했지만, 외교 의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로키 행보'를 보인 것이다.

또 주요 국정에 대해서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하도록 했고, 특히 NSC 상황은 보고가 아닌 친전의 형태로 노 전 대통령에게 매일 알리도록 했다.

고 전 총리는 또 권한대행으로서 업무를 수행한 기간 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할 때를 포함해 총 3차례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주요 현안에 관해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