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박근혜 대통령의 ‘4월 퇴진’과 탄핵 강행으로 맞서고 있다. 내년 4월에 퇴진하든, 탄핵 절차를 밟든 대선 시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4월 퇴진 땐 6월에, 탄핵 땐 헌법재판소 심리 기간에 따라 대선은 4~6월 정도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질서있는 퇴진과 탄핵 사이…'대선 주도권' 겨눈 양보없는 힘겨루기
여야의 셈법은 다르다. ‘질서 있는 퇴진’은 탄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국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게 여당의 주장이다. 야당은 퇴진 시점에 대한 여당과의 협상을 거부하면서 ‘탄핵 강행’을 선택한 이유로 ‘촛불민심’을 꼽았다.

새누리당이 탄핵을 피하고 ‘4월 퇴진-6월 대선’을 추진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탄핵을 하면 두 달 뒤 치르는 대선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친박(친박근혜)계 한 의원은 2일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 곧바로 대선국면에 들어가는데,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 4월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면 보수세력을 결집할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임기 단축을 언급한 상황에서 여당 의원이 곧바로 탄핵에 합세하면 지지층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 비박(비박근혜)계를 ‘4월 퇴진’ 쪽으로 돌아서게 한 요인이다. 비박계가 탄핵에 동의한다면 새누리당은 분당 외길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큰 부담이다. 으르렁대던 친박과 비박이 일단 뭉친 배경이다.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이 존속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연대를 모색해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이 오는 9일 탄핵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징벌적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야당 지도부는 4월 퇴진 협상에 응하는 것은 촛불민심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9일 탄핵안 표결 시 새누리당 비박계 태도가 이전과 달라져 통과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야당이 강행하는 이유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4월 퇴진은 대통령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질서 있는 퇴진 협상에 들어갈 경우 여당에 끌려다니며 대통령 퇴진 시간만 늦춰줄 뿐이라는 게 야당 지도부의 인식이다. 자칫 촛불민심이 야당을 향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헌법재판소 심리 기간에 야당은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총리 추천을 주도하며 실질적인 여당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자신할 수 없는 데다 설령 통과되더라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기 힘든다는 점은 야당으로선 부담이다.

질서 있는 퇴진을 하게 되면 여야가 퇴진 시점을 합의하는 순간부터 대선 일정에 돌입, 대선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반면 탄핵 땐 헌재 결정 때까지 대선 준비는 제대로 할 수 없다. 이후 헌재의 탄핵 심판부터 60일 내에 입후보 선언, 등록, 당 경선 과정을 모두 마쳐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검증과 공약 점검이 힘들어진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질서 있는 퇴진을 하면 정치권이 추천하는 총리 주도로 거국내각이 구성되는 반면 국회가 탄핵 가결 땐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탄핵안 가결 땐 대통령의 모든 권한이 중지되는 반면 질서 있는 퇴진 땐 사퇴 전까지 대통령의 국정 운영 개입을 막을 장치는 없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