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경제지표 금융위기 수준·내년 전망 추락 중
기재부 사령탑 없고 한은은 기준금리 조정 못 해


"19년 전 외환위기 직전에 위기가 닥쳐오는 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당시가 생각납니다"
한 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은 최근 경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면서 위기가 몰려와도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것처럼 최근에도 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최순실 사태 등의 정치 상황에 밀려 관심을 갖고 대비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경기 상황은 경제위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데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에 이어 다음 달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하면 한국경제는 또 한 번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추진 등 정국 수습을 위한 정치권의 논의는 더욱 가열될 예정이어서 경제위기 대응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지표는 이미 '경제위기'…경제위기 경고음 커진다

국내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는 이미 위기 수준이다.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8.5%에 달해 같은 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8.6% 이후 1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작년 제조업 가동률은 74.3%로 1998년 67.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9월 제조업 가동률은 71.4%로, 같은 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68.6%)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낮았다.

소비를 의미하는 9월 소매판매는 내구재, 비내구재 등을 가리지 않고 급격히 줄어 5년 7개월 만에 최대폭인 4.5% 감소했다.

경기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후 7년 7개월 만에 최저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작년 4분기부터 4분기 연속 0%대(전 분기 대비)에 머물고 있다.

연간으로는 작년(2.6%)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3%대에서 2%대로 떨어진 것이 확실시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대폭 낮춰잡았다.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년 성장률을 2.2%로 예상했고 한국은행도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며 2.8%로 잡았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물가는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경기 부진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최근 금융시장에선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로 달러 가치가 급상승하고 채권 금리도 급등하는 등 충격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한은이 국고채 1조2천700억원 어치를 직접 매입하고 정부가 국고채 발행 물량을 줄였지만, 이는 완충 조치에 불과할 뿐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 경제는 누가 챙기나…보이지 않는 경제정책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도 경제정책 당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정책 총괄부처이자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부총리 교체 문제와 맞물려 정책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후임 부총리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내정하면서 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교체가 확실시됐지만, 야당 반발에 부딪혀 임 내정자의 임명이 불투명해지면서 유 부총리가 경제수장 역할을 맡는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역시 청와대 근무 시절 미르재단 설립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에 나서서 기재부 조직을 이끌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 나라 살림인 예산안 처리시한은 당장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헌법상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내년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경제정책방향 수립도 안갯속이다.

이처럼 대응이 필요한 대형 변수가 쌓이고 있지만 부총리 교체 문제가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경제정책방향 수립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기재부와 함께 경제정책의 양대 축인 한국은행은 정책수단이 제한돼 고심하고 있다.

경기 부진과 싸울 한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준금리이지만, 미국 금리 인상과 국내 가계부채 사이에 치여 5개월째 동결만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고자 기준금리를 내리자니 외국인 자본유출이 우려되고, 이를 막자고 기준금리를 올리면 1천300조원의 가계 빚이 경제위기를 촉발할 소지가 있다.

한은은 최근 경기 흐름이 지난 10월에 발표한 경제전망 경로보다 악화됐다고 보고 전망치 하향 조정과 함께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쯤 해소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경제 상황은 점점 위중해지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위기 대응의 귀중한 '골든타임'을 실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융시장 안정과 거시경제 대응은 정치적 이슈가 아니므로 이를 담당하고 추진할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는 있어야 한다"면서 "여야가 하루빨리 합의를 이뤄 경제정책을 담당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또 "현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거나 금리상승을 방치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오히려 기업 수익성 악화와 주택시장 붕괴를 우려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당장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더라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거나 완화적 통화정책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박대한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