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오른쪽)과 원유철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오른쪽)과 원유철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2시30분 TV로 생중계된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는 이날 오전에 전격 결정됐다. 담화문 원고도 박 대통령이 직접 쓰고 참모들이 약간 가다듬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최근 2~3일 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심”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참모는 “퇴진 시기를 못 박지 않고 국회에 자신의 진퇴를 전적으로 맡긴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한 발 더 나간 결정”이라며 “즉각 하야는 아니지만 민심의 퇴진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서청원 전 대표 등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하야·퇴진을 거부해온 박 대통령이 사실상 조기 퇴진을 고심한 것은 사상 최대 인파(주최 측 추산 190만명)가 몰린 5차 촛불집회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탄핵·특검·국정조사 등 3각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데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 등 사정라인 두 축의 동시 사표 제출 등으로 정권 내부마저 붕괴될 조짐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27일 국회의장·국무총리를 지낸 정치권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여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까지 하야할 것을 요구하고 정치권에 거국중립내각, 개헌 등을 촉구했다. 이튿날엔 서청원 최경환 등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중진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질서 있는 퇴진’을 건의했다. 여권 핵심부의 기류 변화에 박 대통령이 급격히 흔들렸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참모들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의견이 엇갈렸고 “대통령이 결심해야 할 사안”이라고만 되풀이했다.

이날 담화는 지난달 25일 1차, 이달 4일 2차에 이어 세 번째다. 4분10초간의 담화는 9분여가 걸린 2차 담화보다는 짧지만 1분40초 정도이던 1차 담화보다는 길었다. 굳은 표정의 박 대통령은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준비한 발언문을 읽었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약간 메이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눈물을 글썽이던 2차 담화 때와 달리 이번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발언을 마치고 퇴장하려고 할 때 현장에 있던 일부 기자는 “질문 있습니다”고 외쳤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오늘은 여러 가지 무거운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가지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때 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취재진에서 “최순실과 공범 관계를 인정하느냐” “질문 몇 개라도 받아달라”는 말이 나왔으나 박 대통령은 바로 퇴장했다.

박 대통령은 애초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조기퇴진 메시지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질문을 받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 참모는 “사실 오늘 끝장토론 형태로 하려 했다.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라면서 “조만간 여러 의혹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