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뇌관'으로 해법 복잡…일방勝 어려운 고차방정식
민주, '누리예산-법인세' 빅딜론 제기…정국탓 여야충돌 조심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이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렇찮아도 어수선한 정국이 더욱 복잡한 흐름을 맞고 있다.

탄핵정국의 한복판에서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의 종합시험 성격인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의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에 내몰린 것이다.

그동안 내년도 예산안 심사과정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소리소문 없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법정처리 시한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돌변하고 있다.

예산정국 최대 쟁점인 누리과정(3∼5세) 예산과 함께 법인세·소득세 인상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는 상황에서 조기대선 가능성까지 대두되자, 각 정당의 수싸움은 더욱 치열해진 분위기다.

예산안 처리 결과 및 처리 과정에서 어느정도 정치력을 발휘하느냐가 탄핵안 처리 결과와 함께 정국 주도권의 향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 법정기한 내 처리 가능할까…여소야대·탄핵 맞물려 복잡한 실타래 = 일단 각 당 지도부는 탄핵 정국에서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를 다짐하고 나섰다.

국정마비 사태 속에서 국회가 국민적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할 경우, 자칫 국회마저도 촛불 민심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이에 각 당은 협상 과정에서 파열음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협상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정국 이전까지만 해도 국회 선진화법 이후 지난 2년간 법정처리 시한을 지킨 것과 달리 이번에는 준예산까지 편성되는 최악의 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현재는 극적으로 법정기한을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법정처리 기한을 넘기더라도 오래 끌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특히 야당은 내달 2일을 유력한 '탄핵 디데이(D-day)'로 삼고 탄핵 절차를 밟고 있는 점도 감안해 여야 간 충돌을 최소화하며 예산안을 처리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탄핵 정국이라는 돌발 변수가 작용하고 있지만, 애초 이번 예산안 처리 방정식은 어느 때보다 고차원이다.

야당은 이번에는 누리과정 예산의 중앙정부 부담을 관철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최순실 국정파문'으로 휘청이면서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 인하된 법인세에 대해서도 야당은 복지예산 확보 및 재정건전성 악화 방지를 이유로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반면, 여당은 글로벌 경제 추세의 역행 등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의석수로만 보면 야당이 유리할 수 있다.

더구나 김현미 예결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데다, 여야 간 예산부수법안 협상 실패 시 본회의 부의 지정권을 가진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민주당 출신이다.

더군다나 여당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과 탄핵 정국에서 사분오열돼 힘을 제대로 쓰기 힘든 처지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각 당의 공약을 반영시키고 국회의원들의 지역 민원 등을 해결할 증액심사는 정부·여당의 동의 없이는 통과될 수 없다.

여야 및 정부가 서로의 '뒷덜미'를 잡아챌 수 있는 만큼, 양보와 타협, 힘겨루기가 어우러지는 고도의 '종합예술'이 이뤄지지 않으면 풀기 힘든 실타래를 긴급 과제로 떠안은 상황이다.

사실상 다수당인 여당의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끝난 19대 국회처럼, 다수의 야당이 일방적으로 판정승을 거두기 어려운 셈이다.

◇ 민주가 먼저 협상카드 '슬쩍'…동상이몽 여전 = 이미 민주당은 협상용 카드를 슬쩍 내밀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정부·여당이 누리과정 예산의 중앙정부 지원을 받아들이면 법인세 인상을 올해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 인상의 당론은 변함 없다"고 진화에 나선 듯했지만,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시기 조절에 대한 정무적 판단은 늘 있는 것"이라며 '전략적 모호성'을 보였다.

이번에는 예산안의 원활한 협상에 대한 야당의 책임도 상당한 데다, 탄핵 정국에서 자칫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계산 속에서, 예전과 달리 야당이 먼저 움직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산부수법안 지정에 부담감을 느끼는 정 의장의 압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협상과정에서 야권공조에 나서야 할 국민의당은 난감한 표정이다.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26일 전화통화에서 "이날까지 예결위와 상임위 협상 과정을 지켜본 뒤 대응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촛불의 함성에는 날로 심해지는 격차 문제에 대한 분노도 담겨있다"며 법인세 인상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여당에서는 법인세 인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수정할 수 없는 대신, 소득세에 대해서는 유연할 수 있다는 기류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안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는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여당의 방어막이 헐거워지는 데 대해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정 최고지휘부인 청와대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상황이어서 지원사격을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더구나 기재부는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기재부 최상목 1차관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의 유탄을 맞은 데다 면세점 선정 의혹까지 겹치며 압수수색까지 받으며 속내가 복잡한 표정이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표면적으로는 누리과정 예산안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국회에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파악하기 힘든 상황으로, 여느 때보다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세종연합뉴스) 이광빈 김동호 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