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워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뉴 애브노멀’ 시대라고 별도로 구분해 부른다. 이럴 때 한 나라의 경제는 대통령(의원내각제는 총리)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 한국이 속한 신흥국일수록 더 그렇다.

대통령 리더십 '타산지석(他山之石)'
대통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경제가 망가지는 국가가 의외로 많다. 선진국에서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그렇다. 올 들어 국가기밀 누설, 역외 탈세 등이 겹치며 국민지지도가 4%까지 떨어졌다. 낮은 국민지지도로 내년 4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못 나올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일 탄핵시위에 쫓기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테러, 난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 나라 안팎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제현안에 제때 대처하지 못함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다시 10%대로 치솟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금융완화정책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다른 유로 회원국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 경제는 퇴조하고 있다.

대통령이 부패를 저지르는 그 자체가 나쁜 일이지만 전·현직 대통령 지지층 간에 누가 부패가 더 많으냐, 적으냐를 놓고 싸우는 국가도 있다. 브라질이 그렇다. 전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국영 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사건에 휘말리면서 올해 8월 말 탄핵 당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대통령 리더십 '타산지석(他山之石)'
한국과 달리 브라질은 대통령이 탄핵으로 유고될 때는 차기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통령이 승계해 잔여 임기를 채우도록 돼 있다. 지난 9월 취임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호세프 지지층은 같은 부패를 저지르고도 누구는 쫓겨나고 누구는 괜찮으냐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자고 외치고 있다. 2014년 상반기 이후 국제 유가 추락과 심각한 부패 문제 등이 겹치면서 브라질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이 -3.8%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유가 회복과 호세프 탄핵 기대감으로 마이너스 성장폭이 둔화할 조짐을 보였으나 지난달 중순부터 ‘재둔화(double dip)’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 많이 퍼주다가 탄핵에 몰린 대통령도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장기 집권’이라는 오로지 개인 목적만을 위한 정치 포퓰리즘적 재정 지출로 국고가 바닥난 지 오래다. 이달 말 예정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기총회에서 감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외채 위기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유가가 추락하기 시작한 2014년 1분기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겪고 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에 근접할 정도로 가히 살인적이다. 생활고를 참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한편으로는 마두로 탄핵 시위에 가담하고, 다른 한편으론 국경을 탈출해 조국을 등지고 있다.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갑질을 일삼다가 지지도가 추락한 대통령도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5월 치러진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 기반이 취약했다. 이 때문에 취임 초기에 승부수로 던진 강력한 마약사범 단속이 성공하면서 국민 지지도가 91%까지 급등했다. 여론조사의 한계를 감안하면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높은 국민 지지도에 편승해 내부적으로 인사 등에 무리수를 두면서 국민의 불만(최근 국민지지도 80% 밑으로 하락)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외교정책으로 미국 등 전통적인 동맹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올 3분기까지 7% 이상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던 경제도 4분기 들어서는 둔화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줄을 잘못 섰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수세에 몰린 대통령도 있다. 4월 발표된 파나마 페이퍼스에서 역외탈세 혐의로 국민 지지도가 급락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월 이후 재침공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힐러리 후보가 패배함에 따라 포로셴코 대통령은 코너에 몰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자와 푸틴 대통령은 2년 전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태동된 신냉전 시대가 종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올 만큼 가까이 다가서 있다.

우리처럼 비선 조직에 의해 경제가 망가지고 있는 국가도 있다. 2009년 취임한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인도의 굽타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국정운영의 윔블던 현상’(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자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인이 우승하는 횟수가 많은 데서 유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괜찮아 보이지만 비선 조직인 굽타그룹의 국부 유출로 남아공 경제는 ‘속 빈 강정’이 되고 있다. ‘종속 이론’을 태동시킨 1970년대 중남미 경제와 비슷한 상황이다. 경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작된 주마 대통령 탄핵 시위가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당초 기대와 달리 국가지도자 역할을 잘해내 경제를 살리고 집권 후반기 지지도가 올라간 대통령도 있다. 재정위기, 난민, 테러 등 수많은 유럽의 난제를 총대를 메고 풀어가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정을 위해 직접 장(場)을 보는 일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지지도가 더 견고해지고 있다. 경제도 구인난을 겪을 정도로 탄탄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국정운영’으로, 전임자 시절 경제위기에 몰렸던 아이슬란드의 귀드니 요하네손 대통령은 연봉 인상을 단칼에 거절해 국민 지지도가 높아졌다.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 임기를 시작하면 당초 우려와 달리 미국 경제가 더 견고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