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범위 법조항 없어…헌법학자 견해와 盧전례가 '교본'
靑 정책조정수석 공석 둔 채 비서실-국조실 업무분담 논의할듯
황교안 체제 '현상유지 관리형'·'보수결집 색깔내기' 엇갈린 전망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가 가시화하면서 국무총리실도 바빠졌다.

야권이 다음 달 9일까지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황교안 총리로서는 대통령 권한대행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총리실은 일단 헌법학자 견해와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상황을 '교본'으로 삼아 대비하며, 탄핵안 가결시 초반 혼란을 감안해 업무 우선 순위를 먼저 검토하고 있다.

법률상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 범위에 대한 명시규정이 없고, 대통령 유고·궐위를 상정한 위기관리 매뉴얼도 세세한 직무 범위까지 설정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면 2004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 건 전 총리 사례를 벤치마킹하게 될 것"이라며 "당시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겠지만, 큰 틀에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총리실에서 당시 사례를 살펴본 결과 구체적 직무범위 매뉴얼보다는 일정 중심의 기록만 있어 대비책 마련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도 국회 탄핵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직무정지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탄핵안 발의도 안됐다는 점에서 공식지침이 마련된건 아니지만, 정책담당 수석실 중심으로 내년도 부처별 주요 정책 리스트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부처에 업무 지시를 내리기 어려운 만큼 정책 중단이 없도록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황교안 대행체제 출범시 국무조정실 비중이 커지는 만큼 청와대 비서실과 국조실간 업무범위 재조정 논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비서실 운영 상황도 참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참모는 "구체적 지침은 없지만 당시 상황을 챙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탄핵국면 조성으로 정책조정수석 공석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핵심 기능이 국조실로 넘어가면서 정조수석 역할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황 총리가 현상유지의 관리형 대행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과 자신만의 색깔을 낼 것이란 전망이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

야권에서 황 총리가 임시로 대통령 직무를 대리하는 만큼 현상유지를 벗어나는 직무는 수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정마비를 막는 최소한 수준으로만 제한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총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개념이 전제돼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무위원이나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중요한 협정이나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

총리실 안팎에선 황 총리가 권한대행을 한다 해도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업무'로 묶어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명권자가 버젓이 자리에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범위를 넘어 업무를 수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반면, 황교안 대행체제 장기화 관점에서 황 총리가 본인의 색깔을 낼 수 있단 시각도 만만치 않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두달 남짓만에 이뤄졌지만,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최대 6개월 소요될 수 있어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서라도 황 총리가 보다 폭넓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만약 헌재가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할 경우 황 총리 권한 대행 기간은 탄핵 인용후 2개월내 치러지는 대선까지 최장 8개월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공안검사 출신에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하면서 보수 결집의 아이콘이 될 수 있고, 대통령과 동일하게 인사권과 정책결정권도 행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