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본사 압수수색한 검찰 > 최순실 씨와 청와대가 대기업으로부터 재단 출연금 등을 받은 대가로 면세점 특허권 부여 과정에도 개입했는지 조사 중인 검찰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SK 본사 압수수색한 검찰 > 최순실 씨와 청와대가 대기업으로부터 재단 출연금 등을 받은 대가로 면세점 특허권 부여 과정에도 개입했는지 조사 중인 검찰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시쳇말로 특별검찰(특검) 조사 전에 다 뒤지겠다는 것 아니냐.”

24일 SK그룹과 롯데그룹에 검찰이 들이닥치자 재계가 패닉에 빠졌다. 전날 삼성까지 포함해 이틀 새 5대 그룹 중 세 곳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재계는 “검찰 수사가 다시 전방위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검찰이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일부 기업을 뇌물죄(제3자 뇌물죄)로 엮기 위해 무차별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왜 갑자기 다시?”… 불안한 재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자 기업면 톱으로 다룬 한국 검찰의 삼성그룹 압수수색 기사. ‘검찰이 삼성을 덮쳤다(Prosecutors Raid Samsung)’는 제목을 뽑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자 기업면 톱으로 다룬 한국 검찰의 삼성그룹 압수수색 기사. ‘검찰이 삼성을 덮쳤다(Prosecutors Raid Samsung)’는 제목을 뽑았다.
재계는 지난 20일 검찰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중간 발표 때만 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7월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면담 뒤 주요 그룹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에 대해 검찰이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기업들이 불응할 경우 각종 인허가상 어려움과 세무조사의 위험성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출연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삼성과 국민연금, 24일 SK 롯데 기획재정부 관세청 등이 압수수색을 당하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일단 최순실 씨 등으로부터 추가 출연을 요구받은 기업들이 수사 선상에 올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은 작년 7월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독대 후 최씨 소유의 독일 회사 비덱스포츠에 280만유로(약 35억원), 최씨 조카 장시호 측 스포츠센터에 16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삼성은 “승마협회 회장사 자격으로 지원했는데 최씨 측이 사적으로 유용했다. 우리도 속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삼성이 이런 지원의 대가로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등에서 특혜를 봤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올 2월 박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 독대 직후 최씨 측으로부터 80억원 지원을 요구받았다. SK는 사업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30억원으로 축소를 제의했고 결국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현안이던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사면 문제, SK네트웍스의 시내면세점 사업권 획득 등과의 연루 가능성이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면세점 사업권 등 현안이 걸린 상황에서 지난 3월 박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이 독대했다. 이후 실제로 70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입금했다 검찰수사 직전 돌려받았다.

“이미지 훼손에 해외 사업 타격”

이번 검찰 수사가 단지 이들 세 그룹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관련해서도 뇌물 공여 혐의를 들여다보기 위해 수사 대상 기업을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4대 그룹 임원은 “기존 검찰 수사에선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기업은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 일단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여겼는데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박 대통령과 총수가 독대한 대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이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출연금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캘 공산이 커서다. 작년 7월 이후 박 대통령과 독대한 기업 총수는 모두 아홉 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이 망라돼 있다.

검찰의 기업 수사가 너무 전방위적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청와대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검찰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기 위해 무리하게 기업들을 털고 있다는 말도 있다”며 “이렇게까지 기업들을 옥죄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이어 다음달 초 국정조사, 특검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기업들은 “경영 활동이 사실상 마비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압수수색 소식이 실시간으로 외신을 타면서 글로벌 비즈니스에도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2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검찰이 삼성을 덮쳤다’는 기사가 났다”며 “국내 간판 기업들이 범죄자로 비쳐 유·무형의 손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용석/장창민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