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좌파 때리기' '박근혜 지키기'로 전통 보수 결집 시도
비박 '개혁적 보수' 기치…중도층에 손짓하고 朴대통령 맹공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과 보수 진영에서 노선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는 10년에 걸친 보수 정권이 내년 대선에서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일단 정국의 중심에 선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와 당 지도부의 진퇴에 대한 견해부터 뚜렷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

이는 보수의 정체성 논쟁은 물론, 전통적 지지층 결집과 중도적 보수층 공략이라는 선거 전략과도 맞물린다.

친박(친박근혜)계로 대변되는 우파 보수 진영은 박 대통령이 두 차례 고개를 숙일 때까지만 해도 한껏 움츠렸다.

그러나 최근 사뭇 달라진 기류가 감지된다.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는 것은 물론 탄핵 절차를 밟더라도 국회에서 부결되거나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여야의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고, 바닥까지 떨어진 당·청 지지율도 조만간 반등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친박계 내부에서 나온다.

한 친박계 의원은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제 '촛불 민심'이 어느 정도 잦아드는 것 같다"며 "국정 정상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친박계 의원은 "당·청 지지율이 낮아진 만큼 야권의 지지율이 높아진 건 아니다"며 "숨죽인 보수층은 결정적인 순간에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전날 도심에 모여 '박 대통령 하야 반대'를 외친 보수 단체 회원들을 든든한 응원군으로 보고 있다.

종북·좌파 세력이 '촛불'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으로 이번 사태를 좌우의 이념대결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친박계의 이같은 이념적 공세는 당내 비박(비박근혜)계를 겨냥한 이중포석이다.

비박계는 보수진영의 '반동 세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박계는 박 대통령 거취 문제에서 친박계보다 급진적이다.

김무성 전 대표 등은 탄핵을 주장했으며, 하야와 탈당을 요구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17일 본회의 자유발언에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대통령을 무조건 두둔하고 감싸는 것은 가짜 보수"라며 친박계의 노선을 정면 비판했다.

친박계가 추구하는 보수는 대통령과 여당을 군신관계로 여기는 '봉건적인 보수'라는 것이다.

그는 "'가짜 보수' 새누리당은 그 수명이 다했다"며 "'진짜 보수'는 법치에 입각해 안정 속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비박계는 친박계 지도부를 향해서도 즉각적인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조만간 탈당할 가능성을 내비친 상태다.

정치권에선 남 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필두로 비박계 대선 주자들이 연쇄 탈당해 보수의 새로운 진용을 구축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기존의 강경 보수 노선을 고수하는 친박계와 달리 비박계는 중도 진보진영도 공감할 만한 이슈도 일부 제기하면서 개혁적 보수 노선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유 의원은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를 내세우고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는 한편, 경제 정책에 진보적 색채를 과감하게 가미하고 있다.

내년 1월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느 진영에 몸을 담느냐도 보수 진영 내부 헤게모니 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지도부가 버티는 가운데 만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친박계로 영입되면 보수 진영의 노선 투쟁은 한층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반 총장이 중도 보수 노선을 정하고 제3의 길을 생각한다면 양상은 다르게 굴러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