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으로 사퇴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후임에 유동훈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을 임명했다. 전날 외교부 2차관 인사를 단행한 지 하루 만이다. 박 대통령의 연이은 차관 인사는 “국정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야당의 퇴진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다음달 열릴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버티는 이유는 뭘까. 우선 자신의 위법행위 여부에 대해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정치 공세에 떠밀려 퇴진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게 참모들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국민 전체가 자신을 비난해도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이날 언론에 배포한 개인 견해 발표문에 박 대통령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 전 총리는 “진실 규명도 되기 전에 대통령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요구와 주장, 그 또한 결코 법 앞에 평등이 아니다. 일시적 분풀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민심에 귀를 닫고, 상황 인식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 참모는 “대통령은 정치적 탄핵으로 ‘식물 대통령’이 돼 버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그래서 국회 추천 총리에게 내치의 상당한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버티는 진짜 이유는 차기 대선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물러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정권이 야권으로 넘어갈 공산이 큰 만큼 임기까지 버티면서 보수층 재결집을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은 차기 정권을 진보 좌파진영에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는 조만간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을 중심으로 ‘동정여론’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16일 시행한 박 대통령 책임방식에 대한 조사(525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에서 탄핵(20.2%)이나 자진사퇴(과도내각 구성 후 사퇴 43.5%, 즉각사퇴 10.2%) 여론이 73.9%로 집계됐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임기 유지·총리 내각통할권 부여’는 18.6%였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에서는 ‘임기 유지’ 의견이 각각 29.5%와 32.5%로 ‘과도내각 구성 후 즉각사퇴’ 의견(각각 24.9%, 31.2%)보다 높았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